삶의 여정/삶의 이야기 32

이런 사람을 찾습니다, 이런 사람이 되고자 욕망합니다

이런 사람을 찾습니다, 이런 사람이 되고자 욕망합니다. 저는 지금 외국에 나와 있습니다. 여러 곳을 다니며 심신을 휴양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기상이변으로 폭우와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데 저만 딴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아 미안합니다. 그런 이유로 여행기를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글도 때가 맞지 않으면 덕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여행기는 기회를 보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여행을 하면서도 틈이 나는대로 한국 소식을 접합니다. 양평고속도로 건을 보니 원희룡 장관의 언행이 도가 지나치더군요.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신경질을 내며 사업추진을 백지화했다가 여론이 좋지 않으니 슬슬 꼬리를 내리는 중이더군요. 이런 무책임한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새만금 잼버리 ..

내 인생 8할이 결정된 곳

사근동, 내 인생 8할이 결정된 곳이다. 1973년 초등학교 5학년 때 이곳에 왔으니 올해로 만 50년이 된다. 이 기간 중 내가 이곳을 떠나 있었던 것은 1994년부터 2006년까지 10년 조금 넘은 기간이었을 뿐이다. 나는 이곳에서 학교 교육을 마쳤고, 사법시험을 합격해 법률가가 되었다. 결혼한 뒤 3-4년을 이 동네에서 살면서 딸 둘을 낳았다. 30여 년 전 강남으로 이사를 갔지만 교수가 되어 모교 한양대로 오는 바람에 나는 다시 이곳 사람이 되었다. 일과 중 자연스럽게 내 발걸음은 이곳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을 마신다. 연구실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본다. 이것이 내 삶의 루틴이다. 요즘엔 제자들을 이곳으로 안내해 밥을 사주면서 때때로 옛날 이야기를 해준다. (물..

글쓰기의 어려움

이곳에 글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글다운 글이 아니라면 굳이 올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일종의 강박관념이다. 누군가는 그런 내게, 그저 가볍게 생각하고, 가볍게 글을 써, 가볍게 올리면 되지 무슨 그렇게 고민을 하느냐고 한마디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생각해왔던 글을 쓰고 싶다. 오랜 기간 이곳에 들어와 남의 글을 보아왔다. 글 중에는 나를 피곤하게 하는 글도 많았다. 일부러 작정하고 사람들을 끌어모으려는 글. 허구한 날 세상과 사람을 재단하는 글. 과도하게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는 글. 이런 글들은 가끔 보면 흥미가 가지만 매일 본다고 생각하면 감당하기 힘들다. 내 글은 어떤 것일까. 혹시나 선생티 내는 글로 또 다른 피곤 거리를 주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나면..

내가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하루에도 몇 번씩 이곳(페북)에 들어와 남의 글을 읽는 게 몇 년이나 되었는가. 족히 10여 년은 된 듯하다. 이렇게까지 이곳에 들어올 계획도, 생각도 없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가끔 이곳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도 뭔가를 남기기 위해선 더 늦기 전에 그것을 찾아 집중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이곳을 들락날락할 것인가. 그런데도 나는 아직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인가 나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그 마력은 특별한 사람들을 보는 재미일지 모른다. 그들로부터 순간순간 어떤 도전을 받기 때문이다. 부러우면 진다고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지 그런 마음보다는 존경심이 생겼다.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 하지 않았는가. 이곳을 돌아보면 도처에 스승이 있다. 잘만 ..

스승에 대한 기억

나는 어젯밤 글에서 요즘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질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 내 학창 시절 선생님들은 내게는 넘사벽이었다고 말했다. 그분들은 나와는 완전 딴 세상에 사는 분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분들이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오늘은 찬찬히 한 분 한 분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을 소환해 내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잠시 생각해 본다. 그분들은 내게 어떤 존재이었을까? (아래 나이는 내가 교수님들을 처음 만났을 때 연세이다.) A 교수님(헌법). 50대 초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돈 걱정 없이 살아오셨다고 들었음. 교수님 중 가장 재산이 많은 분으로 자타가 공인. 독일 유학파인데 강의 시간에 무슨 말씀을 하신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항상 칠판에 독일어를..

아날로그 시대의 스승과 디지털 시대의 스승

저는 가끔 궁금합니다. 과거 제가 경험한 스승에 대한 감정과 지금 제가 가르치는 제자들이 느끼는 스승에 대한 감정이 같을까? 제가 80년대 초 대학을 다닐 때 보았던 선생님들은 제겐 넘사벽이었습니다. 특히 C교수님의 경우 풍채도 좋고 말씀도 잘하셔 당시 인기 드라마였던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에 나오는 킹스필드 교수에 비교되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C교수님의 생몰연대를 확인해 보니, 당시 40대 후반에 불과했습니다. 지금의 제 나이보다 무려 14-15세 아래였던 것이지요.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 대학 시절 저보다 40년 이상 차이가 나는 교수님 몇 분을 만난 기억도 있습니다. 그중 한 분이 D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하시고 일주일에 한 번 시간강사로 오시던 J교수님이셨는데, 그 교수님은 일제시대 ..

정성(精誠)이란

출근을 하면서 캠퍼스의 벚꽃을 감상했습니다. 지난 주말 꽃망울을 터트리더니 오늘 드디어 절정입니다. 3일 연속 사진을 찍어 보니 그 차이가 확연합니다. 오늘 찍은 사진을 올립니다. 저는 매일 출근을 하면서 일부로 학교에서 먼 역(왕십리역)에서 내려 연구실까지 걸어옵니다. 저희 학교는 옛날 청계천 변의 야산을 깎아 만들어졌기 때문에 경사가 심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불평하지만 저에겐 다리 근육을 키우는 데 딱 좋습니다. ㅎㅎ(긍정적 마인드!) 아마 저희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교직원들은 몇 년 캠퍼스를 다니다 보면 단단한 다리를 얻을 겁니다. 저는 경사진 곳을 걷기 위해 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학교로 돌아와 한번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이렇게 출근하니 연구실에 오면 근육의 팽팽함을 느낍니다. 그..

뿌리를 찾아서

저는 항상 말하길, "인간은 뿌리를 잊어선 안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보여주기 싫은 과거라도 그것을 부정해선 안됩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순간 인생은 더 보잘것 없는 것이 됩니다. 저는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그 기억은 가물가물하니, 제 인생의 뿌리는 아마도 이곳 사근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도 매일같이 점심을 먹으며 차 한 잔을 하는 곳, 바로 이곳입니다. 1973년 이곳에 왔으니 꼬박 50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이곳을 잠시 떠나 있었고, 직업을 갖고 나선 강남 사람이 되었지만, 결국 저는 이곳으로 돌아왔습니다. 2006년 교수로 말입니다. 오늘 3년 만에 사근동에 가서 혼밥을 하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 특히 제가 50년 전 전학 온 초등학교를 가보았지요. 73년에도 서울에..

"인권위는 제 인생 전부였습니다" 인권위원 퇴임 인터뷰

http://www.sisajournal-e.com/news/articleView.html?idxno=296819 [인터뷰] 노란봉투법 권고한 박찬운 전 인권위원 “尹정부, 대결적 접근 우려” - 시사저널e - 온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차별금지법, 양심적병역거부, 사형제, 난민, 노란봉투법, 성소수자”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결정은 종종 우리 사회에 민감한 화두를 던졌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 www.sisajournal-e.com 인터뷰를 했지만 지면사정상 기사화되지 않은 내용이 많다. 그 중에서 주요한 문답을 여기에 올린다. Q1. 교수님은 지난 30년 이상 인권문제에 천착해 왔습니다. 그 내용을 잠시 회고해 줄 수 있습니까? A . 처음부터 그렇게 살고자 결심했던 것은 아닌데 살다 보니 그렇게..

사진으로 보는 60년

이제 환갑을 맞이하니, 과거 기억이 어느 때보다 새롭다. 점심을 먹고 명동거리를 걷다보면 40년 전 이곳을 걷던 내 모습이 또렷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환갑에 이른 사람은 분명 노인이었다. 환갑노인이라는 말은 그 시절엔 보통명사였다. 지금은 어떤가. 특별한 게 없다. 환갑잔치할 계획도 없다. 이제 더 이상 환갑노인이란 말도 없는듯 하다. 그저 스스로 인생 60을 음미할 뿐이다. 빛바랜 앨범을 찾아 사진 몇장을 골라 카메라에 담아 여기에 올려 본다. 사진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각해 보았다. 이것이 내겐 환갑기념 행사다.(이 글에선 일부러 내 가족이야기는 뺀다. 아이들이 프라이버시 문제에 민감해 허락없이 사진 한장이라도 올리면 가정의 평화가 깨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ㅜㅜ) 시계 제로 유년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