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삶의 이야기 25

뿌리를 찾아서

저는 항상 말하길, "인간은 뿌리를 잊어선 안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보여주기 싫은 과거라도 그것을 부정해선 안됩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순간 인생은 더 보잘것 없는 것이 됩니다. 저는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그 기억은 가물가물하니, 제 인생의 뿌리는 아마도 이곳 사근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도 매일같이 점심을 먹으며 차 한 잔을 하는 곳, 바로 이곳입니다. 1973년 이곳에 왔으니 꼬박 50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이곳을 잠시 떠나 있었고, 직업을 갖고 나선 강남 사람이 되었지만, 결국 저는 이곳으로 돌아왔습니다. 2006년 교수로 말입니다. 오늘 3년 만에 사근동에 가서 혼밥을 하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 특히 제가 50년 전 전학 온 초등학교를 가보았지요. 73년에도 서울에..

"인권위는 제 인생 전부였습니다" 인권위원 퇴임 인터뷰

http://www.sisajournal-e.com/news/articleView.html?idxno=296819 [인터뷰] 노란봉투법 권고한 박찬운 전 인권위원 “尹정부, 대결적 접근 우려” - 시사저널e - 온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차별금지법, 양심적병역거부, 사형제, 난민, 노란봉투법, 성소수자”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결정은 종종 우리 사회에 민감한 화두를 던졌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 www.sisajournal-e.com 인터뷰를 했지만 지면사정상 기사화되지 않은 내용이 많다. 그 중에서 주요한 문답을 여기에 올린다. Q1. 교수님은 지난 30년 이상 인권문제에 천착해 왔습니다. 그 내용을 잠시 회고해 줄 수 있습니까? A . 처음부터 그렇게 살고자 결심했던 것은 아닌데 살다 보니 그렇게..

사진으로 보는 60년

이제 환갑을 맞이하니, 과거 기억이 어느 때보다 새롭다. 점심을 먹고 명동거리를 걷다보면 40년 전 이곳을 걷던 내 모습이 또렷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환갑에 이른 사람은 분명 노인이었다. 환갑노인이라는 말은 그 시절엔 보통명사였다. 지금은 어떤가. 특별한 게 없다. 환갑잔치할 계획도 없다. 이제 더 이상 환갑노인이란 말도 없는듯 하다. 그저 스스로 인생 60을 음미할 뿐이다. 빛바랜 앨범을 찾아 사진 몇장을 골라 카메라에 담아 여기에 올려 본다. 사진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각해 보았다. 이것이 내겐 환갑기념 행사다.(이 글에선 일부러 내 가족이야기는 뺀다. 아이들이 프라이버시 문제에 민감해 허락없이 사진 한장이라도 올리면 가정의 평화가 깨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ㅜㅜ) 시계 제로 유년시절..

어떤 결혼 파티에서 있었던 일

어떤 결혼 파티에서 있었던 일 . 엊저녁 매우 유니크한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한국 남자와 덴마크 여자가 결혼하는 행사였습니다. 결혼식이라기보다는 결혼 파티라고 하는 게 맞겠군요. 신랑 신부가 가까운 친구를 초대해 저녁 식사를 나누면서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두 사람은 나이가 든 상태에서 인연을 맺기에 이미 사회적으론 상당히 알려진 분들입니다. .서로를 안지 상당한 시간이 흘러 정식 결혼(법률혼)을 결정했답니다. 아마 오래 동안 어제의 결정을 위해 탐색의 시간을 가진 모양입니다. 한 사람은 런던에서, 또 한 사람은 세계를 무대로 여기저기를 돌아 다니는지라, 다른 사람들과는 매우 다른 환경에서 사랑의 마음을 키워 왔을 겁니다. .어제 저를 매우 흥미롭게 만든 한 가지는 결혼신고와 관련된 에피소드..

전화 한 통화로 상대를 감동시키는 대통령

전화 한 통화로 상대를 감동시키는 대통령 . 우리 사회엔 어딜 가도 위계질서 문화가 강력하다. 내가 속한 법조계는 그게 유난히 강하다. 소위 기수문화가 횡행하는데, 법조경력의 길고 짧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처신하면, 큰 코 다친다. 솔직히 말해 나도 이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거기에다 관존민비 현상까지 더해져 현직에 있는 법조인들의 권위주의는 도가 지나친다. 재야 변호사들은 기수가 높더라도 현직 후배에게 깍듯하다. 이 같은 현상은 관이라고 할 수 없는 변호사단체에서도 나타난다. 변호사회 회장이 되면 기수와 관계없이 회원들과의 관계에선 갑을관계로 변한다. .언젠가 핸드폰이 울렸다."여보세요. ㅇㅇ변호사회 회장실입니다. 회장님이 박교수님과 통화를 원하십니다."나는 그 전화를 받자마자 화가 났다. 어라..

기억 그리고 기록에 대하여

기억 그리고 기록에 대하여 이른 아침이다. 책상 앞에 앉아 하루를 시작한다. 머리맡 서가를 둘러보다가 책 한권이 눈에 뜨였다. (2001). 서울지방변호사회가 2001년 일본 변호사회와 교류를 마치고 만든 보고서로 내가 만든 책이다. 나는 당시 서울변호사회의 섭외이사(국제이사)로 일하면서 국제교류를 담당했다. 그 해 가을 우리 서울회의 임원들은 일본 변호사회와의 정기교류 차 토쿄와 오사카를 방문했다. 264쪽의 보고서는 바로 그 교류회에 관한 기록이다. 잠시 쭉 훑어보니 당시 상황이 어젯일처럼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지금도 이런 보고서를 만드는지 모르겠다. 16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국제교류가 많은 지금 이런 식의 보고서를 매번 만든다는 것은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 때도 쉽지 않았다..

동기생들이여, 30년이 지났다

동기생들이여, 30년이 지났다 사법연수원 수료를 앞두고 동기생들과 설악산에서(1986년 겨울) 오늘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했다.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임기 마지막에 대한민국 역사 한 페이지를 장식할 사건의 재판장이 되어 혼신의 힘을 쏟았다. 국민의 염원이 고스란히 담긴 결정문을 낭독하는 떨리는 음성은 많은 사람들 뇌리에서 오래 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그 헤어 롤의 해프닝은 커리어 우먼에겐 오히려 자긍심을 주기에 알맞았다! 그와 나는 1987년 사법연수원을 함께 수료했다. 우린 동기생이다. 젊은 시절 2년간 같은 공간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났다. 오랜 시간이 지나 주변을 돌아보니 동기생 중엔 이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꽤 있다. 어쩜 지금이 그런 ..

그 때 그 여름에 대한 기억

그 때 그 여름에 대한 기억 어제 밤 잘들 주무셨습니까. 참 더웠지요? 저요?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벗어부친 채 선풍기를 밤새도록 틀어댔지만 베갯닛을 축축이 적시고 말았습니다. 두어 번 깨서 땀을 닦고 또 잠을 청했습니다. 이럴 때는 빨리 돈 벌어 집을 옮기고 싶은 생각마저 드는군요. 밤에도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방에서 한 번 시원하게 자볼 수 없을까. ㅎ ㅎ 너무 호사스런 꿈입니까? 그래도 버틸 만은 합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말입니다. 생각나십니까? 그 때 그 더위 말입니다. 1994년의 여름, 이 나라 기상관측 사상 최고의 폭염이 기록된 그 해 그 더위. 저는 그 여름 이후 더운 여름을 만나면 항상 그 때와 비교합니다. “올해 덥네. 하지만 1994년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야. 이 정도는 참..

그 때 그 사람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때 그 사람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내가 맡은 첫 사건-- 30대 초반의 나. 당돌하고 자신만만한 시절이었다. 꿈은 크고 푸르렀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비록 빛은 바랬지만 푸르른 꿈만은 마음 속에 계속 간직하고 있다. 문득 한 사람이 생각난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일이다. 그는 무명의 변호사인 내가 맡은 첫 사건의 주인공이었다. 어느 날 중년의 여인이 내 사무실을 들어왔다. 행색이 초라했다. 그 여인은 이 사무실 저 사무실을 전전하다 내 사무실을 들어 온 모양이었다. 그 여인은 아들 일로 변호사를 구하고 있었다. 아들은 형사사건에 연루되어--사건 내용은 여기서 말하지 않겠다. 아무래도 자세히 말하면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에 반하는 것 같으니--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구금되어..

어딜 가든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아라

어딜 가든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아라ㅡ한국을 떠나는 조카에게ㅡ 이런 글을 여기에 올려도 되는지 많이 망설였다. 사적인 이야기는 SNS에서 좀처럼 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쓰기로 했다. 내 조카도, 그 부모도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기에. 내 조카 태균은 여동생 아들이다. 올 해 26세. 필리핀에서 고교와 대학을 나왔고, 한국에 돌아와 현역으로 병역을 마친 다음, 서울의 모 대학 경영학과로 편입해 올 2월 졸업했다. 매우 우수한 청년으로 졸업할 때 총장상을 받았다. 조카는 아직 새파란 젊은이지만 그 나이 또래에 비해 어른스럽다. 일찍이 아빠(내 매제)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어린 시절 큰 어려움을 겪었다. 어린 아들과 딸을 기르느라 고생한 여동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켠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