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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에서 본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민낯

박찬운 교수 2015. 10. 26. 16:28

박정희 대통령 묘소, 참배객 오른쪽으로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 그들은 박정희 육영수 두 사람의 사진을 앞에 놓고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런데 묘지 옆에는 하얀 옷을 입은 20여명의 사람들이 박정희, 육영수 두 사람의 사진을 앞에 놓고 무슨 염불을 외우고 있었다. 하도 가관이어 조용히 그들에게 다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 보았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박정희 장군님은)..4.19로 나라가 혼란할 때 혜성같이 나타나 나라를 구하시고, 20년간 장기집권을 하시어 나라의 기틀을 만들고, 새마을운동으로 나라를 완전히 개조하시었다.” 21세기 개명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코미디지만, 생각하면 이들도 대한민국의 거룩한 국민인 것을 부정할 순 없다.

 

세 번째, 유물전시관에 들어가 보니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전시다. 이곳 1층엔 대한민국 건국 유공자와 독립운동가의 유물을 보관 전시하고 있는데 규모도 초라하지만 내용도 부실하기 그지없다. 건국유공자 13인 면면을 보니, 친일 행적이 여실한 안익태, 정부수립 후 수도경찰청장이란 이름으로 온갖 권세를 누린 장택상, 박정희 찬사를 대한민국 방방곳곳에 새겨놓은 이은상이 들어가 있다. 대한민국에 인물이 이렇게도 없는가. 

 

이승만과 박정희는 공을 들여 소개하고 있지만 김구는 독립유공자 속에서 보일락말락의 수준이다(재미있는 것은 박정희를 설명하는 문장 속에 '5. 16정변'이란 말이 보인다. 국립묘지 책임자가 이 의미를 아직 모른다는 말인가?). 한마디로 대한민국 독립과 건국유공자를 보여주는 기념관으론 그 규모나 내용 모두 낙제점이다.

 

이 정도만 말하자. 나는 어제 국립묘지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대한민국은 과연 민주공화국인가? 아니다, 아직 멀었다. 우리가 진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선 민중의 민주주의 문맹률을 최소한의 수준으로 낮추지 않고서는 안 되겠다. 그 문맹률이 아직은 다른 민주공화국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다. 깨어 있는 민중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에서라면 그 불평등한 신분제 묘역이, 박정희 신도들의 그 코미디 같은 주문이, 역사의식이 부재한 그 유물전시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