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Essays/깊은 생각, 단순한 삶

독자 중심의 명료한 글쓰기

박찬운 교수 2017. 7. 20. 06:13

독자 중심의 명료한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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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쓰기 원칙을 볼 수 있는 2016년 출간된 <경계인을 넘어서>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의 위기를 말한다. 나는 이 위기의 원인 중 하나를 글쓰기에서 찾는다. 지식인, 그중에서도 인문학자나 인문서 번역가들은 알기 쉬운 글을 쓰고, 알기 쉽게 번역해야 한다. 그래야만 글을 읽는 저변이 넓혀진다. 왜 글을 그렇게 어렵게 써야 하는가. 왜 이해도 되지 않는 번역을 하는 것인가. 그러면서도 한국 사람들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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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글 쓰는 게 주업이 되었다. 하루 종일 글을 쓴다. 아침에 일어나면 메일을 열어보고 답장을 쓴다. 학교에 가면 논문을 쓴다. 지난 몇 년간은 페북 공간에서 대중적인 글을 써왔다. 말도 그렇지만 글도 쓰면 쓸수록 는다. 십년 전 아니 그 이전 글을 가끔 내놓고 들여다보면 지금 쓰는 글과 많은 차이를 느낀다. 알게 모르게 많은 발전을 했다. 과거 글 보다 오늘 쓰는 이 글이 훨씬 읽기가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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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글을 써오면서 나는 몇 가지 글쓰기 원칙을 터득했다. 여기서 그것을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그것이 나와 같이 글쓰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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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독자 입장에서 내 글이 어떻게 이해될 지 고민하면서 쓴다.

글을 많이 쓰면서도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글이 어려워지는 가장 큰 이유는 독자를 배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쓴(혹은 번역한) 글을 독자의 입장에서 읽어보아야 한다. 과연 그게 쉽게 이해될 수 있을지 점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 이 부분은 도저히 독자가 이해를 못할 것 같다, 어떻게 고치면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 이것이 글쓰기의 황금률이다. 이것만 제대로 익히면 글은 반드시 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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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는 명료하게 쓰는 것을 글쓰기의 제1 원칙으로 삼는다.

글의 생명은 전달력에 달려 있다. 그것이 불분명하면서도 온갖 수사를 늘어놓는 글은, 적어도 내게는, 자기기만이며 반지성적 행위다. 신문 칼럼을 읽다보면, 세상의 유식한 이론을 다 동원하고, 사전을 찾아봐야 알 수 있을 법한 고급 어휘를 사용하면서도, 정작 그 뜻이 분명치 않은 글이 많다. 나는 그런 글을 경계한다. 그런 글은 읽을 가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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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료한 글을 쓰기 위해선 우선 한 문단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분명하게 설정해야 한다. 문장은 가급적 단문으로 작성하고, 불가피하게 문장이 길어지면 적당한 장소에 쉼표를 쳐야 한다. 나아가 문장과 문장이 논리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는지 항상 점검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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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는 글을 쓰고 나서 읽어 보면서 고친다.

글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선 일단 글을 쓰고, 그것을 소리를 내 읽어보는 것이 좋다. 그런대로 만족한 글을 썼다고 해도 시간이 지난 다음 읽어보면 고칠 부분이 생긴다. 어떤 때는 문장이 너무 길고, 어떤 때는 단어가 적절하지 못하고, 또 어떤 때는 문장과 문장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런 것을 발견해 고치면 고칠수록 글의 완성도는 점점 올라간다. 그것을 위한 좋은 방법이 쓴 글을 소리 내 읽어보는 것이다. 그럼 어색한 부분이 발견된다. 글을 쓸 때도 (속으로) 읽으면서 쓰는 게 좋다.

4. 나는 글재주보다 장인정신을 믿는다.

독자중심의 명료한 글을 쓴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도공이 최상의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장인정신을 발휘하듯 글쓰기도 그런 정신이 있어야 한다. 도공은 추호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고 자기를 빚고 굽지 않는가. 글도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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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글은 단지 글재주로만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런 글을 쓰기 위해선, 머리를 맑게 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적 수단을 동원해, 정성을 기울여 한자 한자 써 나가야 한다. 조금이라도 흠이 있는 경우엔 그냥 지나치지 말고 다듬고 또 다듬어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내가 쓸 수 있는 최상의 글이 탄생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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