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끝내며
오늘로서 공식적으로 방학이 끝납니다. 저는 이번 겨울방학 매우 외롭게 보냈습니다. 잠시 여행을 다녀온 것 외에는 거의 두문불출했으니까요. 세상 돌아가는 것도 그렇고, 나이가 들어가니 왠지 무력해 지는 것도 같고, 사람 만나는 것도 내키지 않고... 그저 조용히 책이나 읽다가 집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나 한잔 하고, 목욕탕에 가서 땀이나 빼는 게 일과였습니다.
물론 하나는 기억에 크게 남습니다. 내란 사태가 제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는 것, 거리로 나가는 대신 이 사태에 대해 제 의견을 지속적으로 내야겠다 생각하고 두어 달 가까이 꾸준히 글을 써왔다는 것, 그것이 지식인으로서 저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임무라고 생각했다는 것.... 그런 것입니다.
이제 다음 주부터 봄 학기가 시작됩니다. 오늘도 하루 종일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조금 전 이런 메일을 학부 신입생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제 강의가 인기 있는지 오늘 수강 신청과 동시에 100명 정원이 다 찬 모양입니다. 이 강의 신청에 실패한 친구가 보낸 메일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인권에 관심이 있어서 학생 인권부에서 3년 동안 활동하며 교수님의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란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한양대학교에 입학하면 반드시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며 자유와 권리에 대해 배우고 성장하고 싶었습니다...."
이 메일을 읽는 순간 머리가 갑자기 맑아졌습니다. 아직 내가 이렇게 무기력하게 보낼 때가 아니구나, 나를 간절히 원하는 젊은이들이 있구나, 그럼, 조금 힘을 내봐야지!
저 메일을 보자마자 학교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10명을 추가로 받겠다고요. 그리고 그 내용을 저 친구에게 말해 주었지요. 그 친구가 수강 신청에 성공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강의실에 그 친구를 꼭 보고 싶군요. (2025.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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