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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야기 15 ‘목마와 숙녀’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를 찾아

박찬운 교수 2016. 9. 15. 20:04

영국이야기 15

 

목마와 숙녀’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를 찾아

 

 

타비스톡 공원 내의 버지니아 울프 동상, 누군가가 이른 아침 꽃 한 다발을 올려 놓았다. 누굴까?

 

내가 버지니아 울프란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학창시절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알고부터이다. 한국전쟁이 휩쓸고 간 그 좌절과 혼돈의 시절에 그런 감성적인 시를 썼다는 게 믿을 수 없었다. 거기에서 보게 된 이름이 버지니아 울프. 시는 설명이 없지만, 나는 거기에서 그녀가 지적이지만 슬픈 존재임을 알았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목마와 숙녀 중에서)

('목마와 숙녀' 시 낭송을 해 보았습니다. 음미해 주시기 바랍니다.)

음성 녹음 007.m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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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1882-1941), 그녀는 고독의 대명사다.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적 관습이 지속될 때 여자로 산다는 것은 영국에서도 쉽지 않았다. 때는 남성의 시대였고 여성은 부속물에 지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이복오빠로부터 당한 성추행은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에겐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감수성과 지적 호기심이 있었다. 시대가 달랐다면 그녀도 분명 오빠나 오빠의 친구들처럼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에서 공부를 했을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살았던 집 인근의 타비스톡 공원, 공원에 들어서자 이곳이 바로 버지니아 울프가 거닐었던 곳임을 알리는 설명 표지판이 있다.

 

그녀가 고독의 대명사라고 하는 것은 그의 마지막이 극적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녀를 괴롭힌 절대고독은 마침내 그를 자살로 이끈다. 그녀는 1941년 어느 봄날 템즈강에 몸을 던졌다. 그가 왜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는 그동안 자신을 사랑해 준 것에 대해 절절히 감사하는 내용뿐이다. 아마도 고독은 광기를 낳았고 그것은 마침내 그의 생명을 앗아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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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는 런던대학(SOAS) 근처는 이름하여 학문의 거리다. 담장 하나 사이로 영국박물관이 있고, 그 반경 1킬로미터 이내에 영국도서관이 있는가 하면, 유명대학이 포진해 있다. 런던정경대학(LSE), 킹스 칼리지,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UCL) 등등. 그리고 이곳엔 백 년 전 영국의 최고 지식인들이 모여 살 던 곳으로 지금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블룸즈버리 그룹이 매일같이 산책을 했던 고든 공원,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버지니아 울프가 살아 있을 당시에는 이것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고든 공원 내에 최근에 만들어진 인도 시인 타코르 기념비

 

블룸즈버리 그룹. 이곳 거리의 이름 블룸즈버리에서 비롯된 이 그룹은 20세기 초반 이곳에서 파격적인 지적 토론을 벌린다. 그 주요 멤버 중의 하나가 바로 버지니아 울프. 아마도 블룸즈버리 그룹은 버지니아 울프가의 형제들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울프는 부모가 사망하자 언니인 바네사와 케임브리지 출신인 오빠들과 함께 영국 박물관 근처 고든 공원 옆의 아파트로 이사한다. 고든 스퀘워 46번지. 이곳에 오빠 친구들이 모여든다. 대부분 케임브리지 출신의 지식인들이었다. 작가, 예술가 들이 모여들었고, 경제학자 케인즈도 단골로 찾아온다.

 

버지니아 울프 형제를 비롯 다수의 블룸즈버리 멤버들이 모여 살았던 고든 공원 옆의 아파트, 그들이 살았던 백 년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들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윤리를 거부하고 새로운 시대의 윤리와 철학을 희구했다. 남녀의 평등을 주장했고 인간의 본능을 중시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들과의 교류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당당히 이 그룹을 대표할만한 지식인으로 성장한다.

오늘 아침, 한국에선 추석이라 가족들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오순도순 맛있는 음식을 나누겠지만, 나는 그것을 잊은 채 블룸즈버리 그룹이 살던 곳을 찾아 나섰다. 말 그대로 그곳은 내가 있는 런던대학에서 돌팔매를 하면 닿을 곳에 있었다.

우선 버지니아 울프 등이 매일같이 산책을 했을 고든 공원을 찾았다. 고목으로 덮인 공원의 모습은 백 년 전 울프가 거닐었을 때와 거의 같은 모습이다. 울프가 살았던 집, 블룸즈버리 그룹이 모였던 아파트는 바로 공원 옆에 위치하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와 케인즈가 살았던 고든 스퀘어 46번지. 울프 형제는 이곳에서 10여 년, 케인즈는 30년을 살았다.

 

우선 46번지를 찾았다. 바로 이곳이 울프 형제가 살면서 처음으로 블룸즈버리 그룹이 모였던 장소. 울프 형제는 이곳에서 1916년까지 살다가 집을 케인즈에게 넘긴다. 케인즈는 바로 이 집에서 1946년까지 30년을 산다. 51번지도 찾았다. 이곳은 이 그룹의 리더 중 한 사람인 리튼 스트라치의 집이다. 가장 오랜 기간 블룸즈그룹은 이 집에서 모여서 토론을 벌렸다고 한다.

 

블룸즈버리 그룹의 리더였던 리튼 스트라치의 집 51번지. 블룸즈버리 그룹은 이곳에서 가장 오래 동안 모였다고 한다.

 

이어서 나는 거기에서 1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또 다른 공원 타비스톡 공원을 찾았다. 버지니아 울프는 레너드 울프와 결혼한 뒤 고든 공원 바로 뒤에 위치한 타비스톡 공원 근처로 거처를 옮긴다. 아마도 그녀는 매일같이 이 두 공원을 거닐었을 것이다. 지금 이 공원에는 울프의 조그만 흉상이 있어 그녀를 기린다. 도착하니 어느 일본인 친구가 연신 사진을 찍고 있다. 그도 나처럼 울프를 찾아 온 모양이다.

 

타비스톡 공원에 도착하니 나보다 먼저 온 한 일본인이 버지니아 울프의 동상 앞에서 연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도 나처럼 울프를 회상하며 이곳에 온 모양이다.

 

생각해 보니, 버트런드 러셀도 버지니아 울프가 이곳에서 살던 시절 바로 이 근처에서 살았다. 이미 그는 꽤 알려진 수학자, 철학자였으니 블룸즈버리 그룹 멤버들이 러셀을 모를 리가 없다. 아마도 그들은 수시로 거리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을 것이다. 아직 자료는 찾질 못했지만, 러셀이 이들의 초청으로 고든 스퀘어 46번지 울프의 집을 찾았을 지도 모른다. 러셀의 집은 그녀의 집에서 걸어서 십분 거리에 있다

(2016. 9.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