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윤석열의 난

우리는 지금 반동의 계절에 산다

박찬운 교수 2025. 2. 5. 09:12

우리는 지금 반동의 계절에 산다

 

 

이번 겨울을 어렵게 보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요. 정치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참 크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무슨 큰 애국자는 아니지만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우울하기 그지없습니다. 요즘은 개인의 즐거움을 찾는다는 게 사치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제가 올해 우리 나이로 6학년 4이니 지난 4, 50년간 수없이 이 나라의 위기를 겪어보지 않았겠습니까. 박정희의 유신독재, 전두환의 폭정, 이명박의 금권정치, 박근혜의 부패와 무능.... 그런데 이번 겨울에 겪는 위기는 또 다른 차원의 위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역사는 이 시기를 어떻게 기술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반동의 시대라고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반세기 이상 발전시켜온 민주화와 법치주의 그리고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반동이 전면적으로 일어나 사회가 일대 혼란에 빠졌다고 하지 않을까요?

 

그동안 우리는 수없이 위기를 겪어왔지만 의심하지 않는 것이 있었어요. 위기 속에서도 민주주의법치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 우리 사회를 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저는 이런 것은 비록 정치적 견해가 다소 다르다고 해도 우리 모두가 동의했다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내일이 기대되었던 것이지요. 지금은 문제가 있지만 언젠가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요. 그것이 있었기 때문에 고생을 해도 보람이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번 겨울에 대한민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이런 믿음을 근본적으로 의심할 수 밖에 없도록 합니다. 대통령이란 자가 야당이 말을 안 듣는다고 경고성 비상계엄을 했다고 방송에 나와 천연덕스럽게 말을 합니다. 정말 복장 터지고 아연실색할 일인데, 이게 시간이 가면서, 반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국의 여당이라는 정당은 아예 이런 자의 방패가 되어 공공연히 헌정질서를 부인하고 선동합니다. 급기야는 법원이 폭도들에 의해 습격당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자는 조기에 사태를 수습하고 질서 있게 정권을 이양할 생각은 하지 않고 여전히 내란 우두머리의 꼭두각시 노릇을 합니다. 정치권을 비롯해 사회 여기저기에서 헌법재판소의 향후 결정을 부정할 듯한 말들을 쏟아냅니다. 이런 와중에 민심도 완전히 길을 잃은 듯합니다. 내란 세력에 대한 지지도가 위험할 정도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제가, 아니 우리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누구 말대로 우리는 지금 이념적 내전에서 현실적 내전으로 치닫고 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도대체 헌정질서를 부인하면 이 나라는 그저 국가 이전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만 남는 것 아닙니까. 아니 시계가 이렇게 거꾸로 흘러도 되는 것인가요.

 

이번 사태는 우리의 사회적 삶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의 인간관계에까지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저나 여러분 주변을 살펴보십시오. 혹시 지인 중에서 요즘 탄핵 반대 집회에 나가는 분 없습니까? 혹시 사석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던 중에 내란 세력 비호를 하는 친구를 만나지 않았습니까? 오랫동안 존경해 오던 학자나 은사 중 한 분이 어느 날 탄핵 반대에 앞장서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후배나 제자 중에 그런 친구는 없습니까? 아마 꽤 있을 겁니다. 그런 경우 어떻게 합니까? 오랜 기간 살갑게 지내던 관계, 신뢰하고 존경하던 관계가 그날로 깨지는 것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이러니 이번 겨울은 우리들 인생에서 만난 가장 추운 계절입니다. 우리들 마음이 깡깡 얼어붙었습니다.

 

그래도 시간 앞에 장사가 없다고 했으니 봄은 오겠지요. 이 반동의 계절이 물러나고 다시 약동하는 계절이 찾아오겠지요. 그날을 위해 저는, 우리는 할 일을 해야 하는 아침입니다. 결코 좌절하지 말고 꼭 이 혼돈의 시절을 날려 보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