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2023 미국여행

2023 미국여행 2(신들의 정원, 그랜드 서클의 비경)

박찬운 교수 2023. 8. 15. 18:52

 

우리 가족의 첫번째 여정인 그랜드 서클의 케니언 여행은 대략 위의 지도의 붉은 선과 유사하다. 다만 이번 여행에서 그랜드 케니언은 방문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곳은 사람들이 워낙 많이 가는 곳이라 붐비기도 할뿐 아니라 가족 중엔 이미 다녀온 사람도 있어 이번 여행에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곳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이번 여행 우리 가족의 첫번째 여정은 유타주와 아리조나주 경계의 대표적 케니언들을 둘러보는 것이다. 이 지역을 미국인들은 그랜드 서클(Grand Circle)이라고 부른다. 그랜드 서클은 미국의 국립공원이 밀집된 록키산맥이 끝나는 남서부 지방, 곧 유타, 아리조나, 콜로라도, 뉴멕시코 및 네바다가 만나는 광대한 지역을 말한다. 이 지역에는 10여 개의 국립공원이 밀집되어 있는 바, 어느 것 하나도 놓치기 힘든 절경을 자랑한다. 이 지역은 원래 해수면 아래에 있던 지층이 융기되어 높은 산맥을 형성하고 거기에 빙하기를 거친 다음 침식을 거듭해 수많은 계곡이 만들어진 곳이다. 지질은  철분이 다량 함유된 토사가 콜로라도 고원으로부터 밀려와 굳어진 붉은 사암지형이 많다. 이 사암은 수억, 수천만 년의 기간 동안 물(콜로라도 강 및 그 지류의 빠른 물살, 비 그리고 눈)과 바람에 의해 침식됨으로써 기기묘묘한 지형과 암석을 만들어냈다.

까까지른 암석의 협곡(케니언), 톱으로 자른듯한 책상 모양의 평평한 암석(뷰트), 마치 금강산 일만이천 봉을 연상시키는 뾰족한 첨탑의 붉은 암석(후두), 거대한 암석의 한 가운데가 구멍이 뻥 뚫린 천연 아치가 곳곳에 널려 있어 마치 우주선을 타고 다른 행성에 간 기분이다. 대략 10여 개의 국립공원이 있는데, 가장 많은 국립공원을 가진 주가 유타이고 그에 맞먹을 정도의 국립공원과 볼 거리를 제공하는 곳이 아리조나와 콜로라도이다. 이번 여행의 첫 번 째 목적지는 바로 이곳의 일부(이곳 전체를 돌아보려면 한 두 주일 가지고는 안 된다. 그래서 코스를 짤 때 짧게는 2박 3일, 좀 길게는 일주일, 더 길게는 열흘 이상의 다양한 일정을 만들 수 있다) 돌아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그랜드 서클로 진입하기 전에 가고 싶은 한 곳이 있었다. 우리나라 여행서적이나 인터넷 블로그에서 소개하지 않은 곳인데, 매우 유니크한 야외극장이었다.

이제부터 여정의 설명은 사진에 설명을 붙치는 방식으로 해보자. 독자는 사진 한장한장을 음미해 주기 바란다. 각 사진은 나와 우리 가족들이 찍은 수 천 장의 사진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고른 것이다.

 
세인트 조지의 투아칸 극장

라스베가스를 떠난 우리는 15번 도로를 타고 북상을 거듭했다. 저녁 무렵 도착한 곳은 유타주와 네바다 주의 경계에 있는 세인트 조지라는 작은 도시. 우리 갖고이 이곳에서 1박을 하기로 한 것은 그날 초연되는 뮤직컬 '노틀담의 곱추'를 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내 관심사는 이 뮤지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뮤지컬 공연되는 독특한 야외극장을 보기 위함이었다. 세인트 조지는 도시 전체가 붉은 암석으로 둘러 쌓여 있고 집들도 그 암석 위에 지어져 있다. 인구 8 만의 이 도시 외곽에 멋찐 공연장이 있는데, 바로 투아칸 극장 (Tuachan Amphitheatre). 차를 몰고 고도를 높이면 산 아래로 도시가 보이면서 산 기슭에 고대 로마의 원형극장 모양의 극장이 보인다 . 1995 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연중 뮤지컬 등 공연이 야간에 이루어진다. 뮤지컬에 대해 잘 모르지만 함께 본 아내와 딸은 매우 수준 높은 뮤지컬이라고 평한다. 이런 오지에서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에 뒤지지 않는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채롭다 . 나는 공연 내내 그 내용보다는 주변의 환경에 넋을 잃고 말았다 .

 

자이언 국립공원

자이언 캐니언은 15번 도로 상에 있는 유타의 세인트 조지에서 9번 도로 등을 타고 80여 킬로미터 들어가면 관리사무소 입구에 도착한다. 나는 관리사무소 인근의 조그만 호텔을 예약하고 그곳에 짐을 푼 다음 본격적인 자이온 친견에 나섰다. 이곳의 이름 자이언은 성경의 구약에 나오는 시온의 영어식 이름이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지역의 역사적 지명으로 기독교인에겐 종교적 고향과도 같다. 시오니즘이란 바로 이 지명에서 나온 것이다. 유타는 몰몬 교도들이 개척한 곳이라 이곳의 명칭도 19세기 말 이곳에 처음으로 도착한 초기 몰몬 교도들에 의해 붙여졌다. 20세기 초 태프트 대통령 시절 국립공원이 되었으니 미국인들의 발길을 허락한 것이 어언 100년이 넘었다. 이곳을 즐기는 것은 다른 케니언과는 달리 그냥 뷰포인트에서 관망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직접 트렉킹을 해야 한다. 산봉우리 정상으로 올라가는 코스를 택해 힘겹게 한 걸을 한 걸음 올라 정상에서 아래를 관망하거나, 내로우(Narrow)라 불리는 협곡에서 흐르는 물길에 발을 담고 한 발짝 두 발짝 움직이며 주변과 협곡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빛을 느껴보는 것이다. 내 마음 같아서는 나도 당장 이런 모험을 해보고 싶었지만 가족들의 반대로 아쉽게 이루지 못했다. 밖의 날씨는 40도가 넘는 가운데 태양이 작열하고 있었고, 가족 여행에서 혼자서만 그런 모험을 한다면 그 원망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위의 사진은 모두 내가 찍은 것이지만 아래 사진 3장은 내가 위치했던 곳에서는 도저히 자이언의 위용을 소개할 수 없어 부득이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가져온 자료사진들이다. 이 사진들을 보면 자이언의 전체적인 위용과 이곳을 찾은 이들이 어떻게 트렉킹을 하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브라이스 케니언

브라이스 케니언은 그랜드 케니언의 많은 케니언 중 보석 그 자체이다. 이곳은 자이온에서 140여 킬로미터 차를 몰면 도착하는데 운전하다보면 점점 고도가 높아짐을 알 수 있다. 3000미터에 가까운 고원지대에 들어서 어떤 뷰포인트에 서면 아래에 수많은 첨탑을 볼 수 있다. 후두(hoodoo)라고 불리는 수만개의 사암첨탑들이 마치 원형극장처럼 서 있다. 이러한 첨탑은 모두 물과 바람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이곳이 수억 년 전에 바다 밑에 있을 때 토사가 쌓여 형성된 암석이 융기에 의해 우뚝 솟은 후 빗줄기와 흐르는 물의 힘에 의해 다시 본래의 토사로 바뀌어 흘러 내려 갔는데 단단한 암석부분은 침식에서 살아남아 오늘의 첨탑이 된 것이다. 이곳은 식생도 볼만하다. 조금 저지대엔 향나무 비슷한 나무가, 조금 올라가면 소나무와 전나무들이 무성하다. 붉은 토양과 암석 그리고 푸른 나무 그리고 계곡에서 흐르는 물 거기에다 구름 몇 점이 떠 다니는 코발트색 하늘, 이런 것들이 어울어진 케니언이 브라이스다. 올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맨 위의 사진은 브라이스 케니언의 정수를 볼 수 있는 브라이스 포인트에서 찍은 것이고, 아래 두 장은 모시 케이브(Mossy Cave)의 트레일에서 찍은 것이다. 아무리 햇빛이 강렬해도 이곳에서 약간의 트렉킹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예의가 아닌듯 해 가족들을 설득해 한 시간 정도 산속으로 들어갔다. 가족들은 한 발 한 발 띄면서 계곡의 비경에 압도되었다.

 

호슈 벤드

나는 이번에 그랜드 서클 지역을 돌아보면서 일부러 그랜드 캐니언을 뺏다. 그러나 그 일부를 보았는데, 그것은 그랜드 케니언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호슈 벤드라는 곳이다. 브라이스 케니언에서 차로 250여 킬로미터를 달리면 글렌 케니언댐을 거쳐 아리조나의 페이지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한다. 여기에서 호슈 벤드라는 곳은 불과 몇 마일 떨어진 곳. 이곳에 가면 콜로라도 강이 그랜드 케니언에 어떻게 닿는지, 그 지역을 어떻게 수천만년 동안 침식해 왔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물길이 마치 말발급처럼 돌아간다고 해서 붙쳐진 이름이 호슈 벤드(Horseshoe Bend)이다. 사진 첫 장은 호슈벤드에 오기 전에 잠간 들른 글렌 케니언댐이다. 콜로라도 강은 콜로라도주를 비롯해 록키산맥 일원의 여러 주의 젖줄같은 역할을 하는 강이며, 그랜드 서클 지역의 지형을 만든 주인공이다. 이 지역의 강우량은 연간 몇 백 밀리도 안되기 때문에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선 항시 물관리가 문제였다. 그 방책으로 생각해 낸 게 대공황 이후 뉴딜 정책을 시행하는 가운데 후버댐을 만들어 인공호수(미드호)를 만들었고, 또 하나는 바로 이곳에 또 다른 댐을 만들어 호수(파웰호)를 만든 것이다. 즉, 콜로라도강의 하류는 후버댐으로 막은 물로 전기와 각종 생활용수를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등에 제공하고 있고, 그 상류엔 파월댐으로 유타와 아리조나 등에 전기와 생활용수를 제공하고 있다.

 

엔텔로프 케니언

엔텔로프 케니언은 호슈 벤드를 구경하고 하룻밤을 페이지에서 자고 다음 날 아침 친견에 나섰다. 이곳은 관리가 매우 철저한데 개인 관광을 허용하지 않는다. 페이지 시내에서 이곳을 가는 셔틀에 탄 다음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페이지에서 몇 마일을 가면 바로 사막지대에 들어가는 데 먼지를 일으키고 사막 한 가운데로 들어가면 지하 동굴 모양의 소위 슬롯 케니언에 도착한다. 일반적으로 이 지역의 케니언은 거대한 암석 사이의 협곡과 그 사이를 지나는 강을 연상하는데 슬롯 케니언은 평상시에는 사막 한 가운데 지하에 숨어 있다가 큰 비가 내리면 물줄기가 케니언의 좁은 구멍으로 비집고 들어가 온갖 침식을 함으로써 기기묘묘한 지형을 형성한다. 엔텔로프 케니언은 이런 슬롯 케니언이 몇 개 있는데, 관광객들은 그 중 대표 슬롯 케니언인 업퍼(Upper) 엔텔로프를 간다. 우리 가족도 바로 이곳을 갔는데 한 시간 정도 케니언 안에 들어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사진을 찍었다. 동굴 천정에서 빛이 들어면 동굴의 이곳 저곳은 햇빛에 의해 신비한 형상을 만들어낸다.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이곳은 하루 중 어느 시각에 도착하느냐에 따라 사진이 달라진다. 정오무렵 도착하면 햇빛이 수직으로 내려 비출 것이니 가장 좋은 빛과 그림자를 만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10시 무렵. 이때도 햇빛은 강렬했다.

 

모뉴멘트 밸리

페이지에서 호슈 벤드와 엔텔로프 케니언을 본 다음 차를 몰고 200여 킬로미터 떨어진 모뉴멘트 밸리로 향했다. 이곳은 유타와 아리조나의 경계에 위치한 곳으로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에 해당한다. 개인적으로 이번 그랜드 서클 여행을 하면서 가장 인상에 남는 곳 하나가 어디냐고 물으면 나는 이곳 모뉴멘트 밸리라고 말할 것이다. 이곳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 말이나 글로 설명할 길이 없다. 사진으로 설명하면 대충은 가능한데 그것은 내 눈에 들어온 것의 몇 백분의 일도 안된다. 지구상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일출에서 일몰을 목격하고 그 과정에서 이곳 전경을 보면 천상의 세계가 따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곳 보호규역에는 딱 하나의 호텔(The View Hotel)이 있다. 방 수가 그리 많지 않아 성수기에는 예약하기가 쉽지 않다. 작은 호텔인데다 층수가 3층에 불과하고 외부 도색을 그 지역과 맞추었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그저 자연 속의 일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호텔이 중요한 것은 모뉴멘트 밸리의 핵심을 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온 관광객은 비록 이곳에 투숙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모뉴멘트 밸리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위해선 이곳에 올 수밖에 없다. 우리 가족은 똑똑한 딸 덕에 수 개월 전에 이미 예약해 두어 절경을 하루 종일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방문만 열면 모뉴멘트 밸리의 상징적인 모뉴멘트를 그대로 친견할 수 있었다. 이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신의 작품들이다. 이곳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선 17마일에 걸친 공원 내부의 도로를 통해 차를 몰면서 곳곳의 뷰 포인트에 주차를 시키고 주변을 둘러 보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이 로드 트립을 하면서 수 백장의 사진을 남겼다. 위의 사진은 그 중 일부이다. 이곳은 서부극의 대명사인 존 웨인과도 관련이 깊다. 그의 작품 몇 개가 여기서 촬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곳곳에 영화에 나오는 장면에 가면 존 웨인 포인트라는 표시가 되어 있다. 밤에는 호텔에서 존 웨인 주연의 영화를 무료로 상영한다. 사진 중 4번째 말이 나오는 사진이 바로 존 웨인 포인트에서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이다. 맨 마지막 사진은 톰 행크스의 포레스트 검프의 배경이 된 포레스트 검프 포인트에서 찍은 것. 도로 한 가운데에 나가 일직선의 도로와 멀리 보이는 모뉴멘트 밸리를 동시에 찍었다면 좋았을텐데, 오는 차량이 많아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아치스 국립공원

우리 가족은 모뉴멘트 밸리에서 하룻밤을 자고 밸리 이곳 저곳을 관망한 후 점심 무렵 유타의 아치스 국립공원이 있는 모압(Moab)를 향해 250여 킬로를 달렸다. 아치스 국립공원은 사암이 침식과 풍화를 거쳐오면서 곳곳에 사암 아치를 만들어 놓은 곳이다. 사막 지대에 듬성듬성 나무가 있고 거대한 붉은 암석이 기기묘묘하게 들어서 있는데, 개중에는 가운데에 구멍이 뻥 뚫려 있다. 물, 바람 그리고 시간이 만든 신의 작품이다. 누구 말대로 풍경이 비현실적이다. 물론 브라이스와 모뉴멘트 밸리에서 비경을 보고 워낙 많이 탄성을 질렀기 때문에 이곳에서 지른 탄성이 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다른 곳을 들르지 않고 이곳을 처음 오는 사람들이라면 하루 종일 신의 작품에 연신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는 본시 사람을 위한 정원이 아니라 신들이 자신들을 위해 만든 신들의 정원. 우리가 그런 정원을 볼 수 있다는 데에 신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전문 사진사들은 이곳에서 달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만월이 뜨는 날 아치 한 가운데 달이 떠오르는 순간을 포착해 한 장의 사진으로 남긴다. 상상만 해도 그 모습이 어떨지 심장이 뛴다. 맨 마지막 사진은 2킬로 이상의 거리에서 줌을 사용해 찍은 것인데, 이곳 아치스에서 가장 알려진 델리케이트 아치의 모습이다. 저 아치는 유타의 상징물로 유타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저기까지 가기 위해선 도로에서 한 시간 정도 등산을 해야 하는데 가족들의 상태로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아쉽지만 저것을 볼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내 그 모습을 찍어 가려고 수십 장의 사진을 찍었다.

(2023. 8.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