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2023 미국여행

2023 미국 여행 1(소회)

박찬운 교수 2023. 8. 15. 04:11
2023년 여름 나의 미국여행. 지도상에 노란색으로 표시된 선이 내가 차를 몰고 여행한 행선지다. 대략 4천 마일, 6천 킬로미터가 넘는다.

 
나는 여행을 중시한다. 책으로 지식을 쌓고, 운동을 해 단단한 몸을 지녔다 해도 여행이 없다면 공허한 인생이라 생각한다. 여행을 통해 지식과 몸이 혼연일체가 됨을 느낄 때 성숙한 삶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살지만 지난 4년간 여행다운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코로나 때문이었고, 3년간 공직 수행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올 2023년 여름은 특별하다. 4년간의 휴지기를 깨고 다시금 원래의 나로 돌아가는 때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의 미국 여행을 계획했다. 아마 딸이 미국에서 살지 않았다면 이 계획보다 다른 계획을 세웠을 지 모른다. 딸이 결혼해 미국에 간지 4년이 되었지만 한번도 가보질 못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딸도 사위도 공부하러 간 사람들이라 미국에 살면서도 여행다운 여행을 해보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딸 내외와 차를 몰고 미국이 자랑하는 자연의 비경을 이곳저곳 돌아보고 싶었다.  2023년 7월 어느 날 흥분된 마음으로 인천공항을 떠나 딸 내외가 기다리고 있는 라스베가스에 도착했다.
 

라스베가스 벨라지오 호텔 앞 분수 쇼. 30여 년 전에는 미라지 호텔이 밤의 주인공이었는데 지금은 그 역할을 벨라지오가 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라스베가스에서 딱 하룻밤을 자고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다. 딸 내외가 사는 솔트레이크로 향하면서 도중에 자연의 비경을 볼 수 있는 여러 국립공원을 돌아보았다.

 

떠나면서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장맛비가 연일 대한민국 곳곳을 할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이런 중에 미국으로 떠나다니 ...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런 이유로 나는 행선지에서 SNS를 통해 내 안부를 알리거나 명승지 사진을 올리지 못했다. 아무리 봐도 덕이 되지 않는 행동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딜 가나 사진을 찍고 그것을 정리하면서 여행의 의미를 새기는 일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가, 이것을 오로지 나만 보고 즐길 수는 없지 않은가. 언젠가 친구들에게 이 멋찐 여행을 알려주고 싶었다.
 

라스베가스를 떠나 유타와 아리조나 경계의 여러 케니언을 들렀다. 사진은 그 중 하나인 브라이스 케니언. 브라이스 포인트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장면인데, 사암이 물과 바람에 풍화되어 만물상이 되어 버렸다. 보는 순간 입이 쩍 벌어졌다.

 
이하의 여행기는 2023년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 사이 시도한 여행을 정리한 것이다. 이 기간 중 나는 세 번의 여행을 감행했다. 첫번 째는 미국 도착과 동시에 라스베가스에서 솔트레이크를 가는 도중 일주일에 걸쳐 유타와 아리조나 경계 지역인 소위 그랜드 서클의 국립공원 몇 곳을 돌아본 것(주로 케니언을 보았음), 두 번째는 솔트레이크 체류 중 6일간 시간을 내 덴버를 중심으로 록키 마운틴을 돌아본 것, 마지막은 귀국 길에 시애틀로 가서 일주일 동안 샌프란시스코까지 차를 몰고 내려가면서 미국의 서부지역을 돌아본 것 등이다. 물론 솔트레이크에 있는 동안에는 그곳과 주변을 둘러봄으로써 이제껏 알지 못한 유타의 진수를 느끼는 기회를 가졌다.
 

유타와 아리조나 경계에 있는 모뉴멘트 벨리의 모습. 마치 지구를 떠나 외계에 도착한 느낌이다. 나는 저 광경을 보면서 하룻밤을 이곳에서 보냈다.

 
아마도 내 인생에서 이런 여행은 아주 오랜만이다. 내 나이 30대 중반 시절(1996-1998) 미국에서 2년간 유학을 하는 동안 틈틈이 가족들과 여행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아이들은 큰 애가 초등학생이고 작은 애가 유치원에 다녔는데, 우리 가족은 대륙을 횡단해 보기도 하고 시애틀에서 로스엔젤레스까지 해안 도로를 타고 내려와 보기도 했다. 공부가 끝난 다음에는 유럽으로 가 반 년 간 인턴십(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을 받기 전 한 달에 걸쳐 가족들과 유럽여행을 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사뭇 다른 환경이다. 그때는 내 나이 마흔이 안 된 청년시절(?)이었다. 의욕은 넘쳤지만 지식은 짧고 경험은 부족했다. 아이들도 심도 있는 여행을 함께 즐기기엔 어린 나이였다.

이제 세월이 흘러 나도 어느새 환갑을 넘긴 노신사가 되었다. 그 사이 변호사에서 교수로, 또 인권기구의 고위 공직자로서의 경험을 쌓았다. 지식을 추구했고 그것을 확인하는 많은 여행을 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여행은 긴장의 연속이었고 충분히 보고 느끼기엔 짧은 여행이었다. 그것이 늘 아쉬움이었다. 그러나 이번은 사정이 다르다. 시간도 넉넉하고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똑똑한 딸이 옆에서 도와주었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여행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하늘에 감사할 일이다.
 

유타의 모압(Moab) 인근의 아치스 국립공원. 이 공원에는 사진과 같은 아치 모양의 암석들이 즐비하다. 자연의 신비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덴버에서 두어 시간 떨어진 록키산맥의 에코 레이크. 호수의 물은 빙하가 녹은 물이다. 해발 3천미터가 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골든 게이트 브릿지). 금문교는 30여 년 전 보았던 그대로다. 여전히 바람은 쎄고, 시시각각 안개가 앞을 가렸다. 이 다리 전체를 보기 위해선 신의 은총이 있든지, 평소 선덕을 많이 쌓든지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그동안 많은 곳을 다녀보았지만 주로 도시문명에 심취했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유럽으로 가도록 발길을 재촉했고, 실크로드와 티벳여행을 재촉했다. 나는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지, 인간이 지난 수천 년 동안 어떤 문명을 일으켜 오늘에 이르렀는지 그것을 알고 싶었다. 자연의 위대함과 숭고함은 나 역시 인정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아름다운 자연, 장엄한 자연은 신들의 정원일뿐 인간의 정원이 될 수 없다고도 생각했다.

이번 여행은 그런 나의 여행 패턴에 큰 변화를 준 사건이다. 나는 드디어 신들의 정원에 초대되어 신들이 만든 지극히 아름다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미국 여행은 자동차 여행이 정수다. 사진은 솔트레이크를 떠나 I-80을 타고 콜로라도로 가는 길.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이런 길을 200마일 이상 달렸다.

 

콜로라도 여행 중 콜로라도 스프링스를 떠나 아스펜을 향해 가는 중 비스타 부에노라는 곳을 지날 때 본 광경. 저 앞의 산들이 콜리제이트 피크. 산 이름에 하버드, 예일, 콜롬비아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

 

솔트레이크 인근의 소금사막 보너 빌. 남미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에 비견된다. 바다가 지각변동으로 솟아 오르고, 그것이 빙하기를 거친 다음 염호가 되고, 작열하는 햇빛에 증발되고 소금이 되었다. 자연의 장엄함에 한 순간 숙연해졌다.

 
이번 여행기간 긴 운전을 했다. 나는 평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에 연간 주행 거리가 1천 킬로를 넘지 않는다. 그런 내가 무려 6천 킬로가 넘는 여행을 했고, 4천 킬로가 넘는 거리를 내가 직접 운전했다. 미국 여행은 전형적인 로드 트립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운전을 할 때마다 졸음운전을 하던 나이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었다. 약간의 긴장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오랜만에 미국 대륙 이곳 저곳을 자동차로 누비며 다니는 여행은 내게 여행 이상의 의미를 주었다. 몸과 마음이 젊어진 느낌이다. 호연지기라 할까?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대지 한 가운데에 시속 130여 킬로로 달리는 내 모습을 그려보면 지금도 짜릿하다. 나는 그렇게 유타와 아리조나, 와이오밍과 콜로라도, 와싱톤주와 오레곤 그리고 캘리포니아를 돌아다녔다. 60대에 들어서 이런 다이내믹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2023. 8. 15)

2회 이후는 사진을 중심으로 그랜드 서클, 콜로라도, 솔트레이크, 미국 서부(시애틀에서 샌프란시스코)를 4회에 걸쳐 소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