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2023 미국여행

2023 미국여행 3(록키 마운틴에 오르다)

박찬운 교수 2023. 8. 16. 10:39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신들의 정원'에서 파이크스 피크를 바라보며

 
그랜드 서클 여행을 마치고 솔트레이크에 도착해 일주일을 보내니 다시 여행 본능이 꿈클거리기 시작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한번 더 특별한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딸 내외는 학교 일로 바빠 나와 아내 둘만 떠나는 계획을 짰다. 콜로라도 록키 마운틴! 옛날부터 콜로라도에 가서 록키 마운틴을 제대로 보고 싶었다. 4천 미터가 넘는 고봉에 올라 만년설을 보고 끝없이 펼쳐지는 산과 계곡을 바라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존 덴버가 록키 마운틴 하이(Rockey Mountain High) 에서 부른  '짙푸른 산속 호수의 고적함(serenity of clear blue mountain lake)'이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산 속 여기저기에 산재한 빙하가 녹은 호수, 그것을 둘러싼 산과 뭉게 구름, 록키 마운틴의 진면목이란 그런 것일까? 인터넷 검색을 통해 록키 마운틴 사진을 보니 마음은 이미 산 속을 헤매고 있었다. 그래 떠나자!

미국 여행의 정수는 자동차 여행이다. 워낙 넓은 땅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는 한계가 있으니 직접 차를 모는 수밖에 없다. 미국인들이 차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만하다. 차를 운전해 하루에 몇 백 마일을 달리면서  산천과 사람 그리고 도시를 보는 게 미국 여행이다. 그런데 이런 여행을 막상 외국인들이 하려면 즐거움보다는 부담이 앞선다.  나이가 들어가니 새로운 것에 적응하기가 녹녹치 않다. 앱을 깔았지만 목적지를 제대로 찾아갈까, 미국의 인터넷은 한국과 달라 도시를 벗어나면 무용지물이니 스마트폰만 믿고 다닐 수도 없다. 한국에서도 셀프 주유를 해본 적이 거의 없는데 주유는 제대로 할까, 혹시 도로 중간에서 기름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도심에 들어가 주차를 하려면  어려움이 많을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면 팁은 얼마나 주어야 하지?  숙소는 어떤 방법으로 찾아야 예산 범위 내의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평상시 남의 일로만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곳곳에서 펑크가 나 헤맬 수밖에 없다. 나의 경우 미국에서의 운전은 처음이 아니지만 그것은 거의 30년 전의 일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고 그 때의 환경과는 완전히 다른 시대다. 한 주 전의 그랜드 서클 여행은 사위와 딸이 있으니 어려운 게 없었다. 이제 내가 그 모든 일을 도맡아 직접 운전대를 잡고 망망대해 같은 대륙 한 가운데를 질주해 가야 한다. 이런 저런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하지만 어찌하랴. 닥치면 해결할 수 있을거라는 자신감으로 떠나는 수밖에.

7월 28일 이른 아침 전날 공항 가서 빌려온 차(라브4)를 이용해 숙소를 출발했다. 덴버로 가는 길. 아내와 둘이서 오랜만에 시도하는 장거리 여행이다, 가야 할 길이 멀다. 이번 일정은 I-80 을 이용해 덴버로 간 다음 그곳과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각각 2박을 하고, 24번 도로와 I-70을 이용해 솔트레이크로 돌아오면서 아스펜과 글렌우드 스프링스를 들러 거기에서 1박을 하는 일정이다. 솔트레이크에서 덴버까지는 500마일이 넘으니 하루에 800킬로미터를 가야 한다. 쉬지 않고 차를 몰면 8시간 정도, 돌아오는 길도 거의 비슷한 거리다. 이러저러하게 돌아다니다 보면 거의 2천 킬로를 달려야 한다. 이런 운전은 1996-1998년 유학시절 외에는 해본 적이 없다. 특히 나에겐 30분 이상만 운전을 하면 졸음이 찾아오는 치명적 결함이 있다. 그런 내가 이런 장거리 운전을 할 수 있을까?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긴장이 되었는지 여행 기간 중 졸음은 없었다(다만 돌아오는 길 솔트레이크 인근에 와서 극심한 피로감에 잠시 졸음이 찾아와 순간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적이 있다). 신기한 일이었다.

미국의 산천은 여전히 넓다. 가도 가도 끝이 없고 멀리 지평선만 보인다. 유타 구간에선 좌우가 붉은 토양의 황량한 산이 많았지만 와이오밍 구간(4-5백 킬로미터)에선 광대한 목초지가 나타나더니 콜로라도에 들어서니 나지막한 구능과 목초지가 번갈아 펼쳐졌다. 돌아오는 길 록키 마운틴을 넘을 때는 록키 산맥의 진수를 느꼈다. 8월 초 가장 더운 시기임에도 산 정상에는 제법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24번 도로를 통해 아스펜으로 오는 길에 넘은 인디펜던스 패스는 해발 3600미터가 넘는 곳이라 잠시 멈춰 걸어보니 숨이 턱턱 막혔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구간에선 가슴이 뻥 뚫리는 경험이었다. 일망무제의 대지를 질주하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대견하다. 법률가로 지난 30년을 숨가쁘게 생활하다보니 어느새 내 나이 환갑을 넘겼다. 젊은 사람들 보기에 이제 뒷방 노인네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런 내가 다시 청년이 된듯 차를 몰고 대지를 질주한다.

운전하는 도중 출발 전 걱정했던대로 몇 번 당혹스런 일이 있었다. 첫 번째 주유를 하는데 신용카드를 넣으니 우편번호를 넣으라고 한다? 이게 무엇일까 몇 번 시도를 하다가 결국 점포로 들어가 돈을 내고 주유를 했다. 두 번 째 주유 때도 당황했다. 카드를 넣고 주유를 끝내니 영수증 출력을 원하느냐고 묻는다.  Yes를 눌렀으나 영수증 출력이 안된다. 별 문제 아니라고 그냥 자리를 떴는데 호텔에 도착해 보니 결재가 1불. 이것이 무슨 시츄에이션? (딸에게 물어보니 미국의 주유 결재는 이렇게 한다는 것이다. 우선 1불을 결제하고 나머지는 일정 기간 이후 결제한다? 우리와 다른 시스템이다.) 하나 하나가 스트레스이나 이것도 재미라 생각하고 달리는 수밖에 없다.

덴버에 도착하자마자 식당을 찾았다. 문자로 딸이 맛집을 알려줘 그 집을 찾았다. 구글 지도로 찾아보니 호텔에서 2마일 정도 떨어진 곳. 차를 몰고 가보니 주차 시킬 곳이 없다. 돌고 돌다가 한 자리를 찾아 가까스로 주차를 한 다음 식당에 들어가니 꽤 큰 식당이다.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려니 전화번호를 요구한다. 자리가 나오면 연락해준다고. 나는 미국 전화번화가 없다고 하니 한국 전화번호 쓰면 연락해준다고 한다. 10여 분 후 진짜 문자가 왔다.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려고 하니 무슨 음식이 좋은 지 알 길이 없다. 다시 구글로 이 음식점을 찾아 메뉴 사진을 보고 먹음직스런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주문을 했다. 과거보다 편하긴 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리뷰를 달아 놓으니 먹어보지 않아도 메뉴에 신뢰가 간다.

덴버는 콜로라도 주도로 해발 1,600미터 고원지대에 만들어진 도시다. 그런 이유로 덴버는 마일 하이 시티( Mile High City)라고 불린다. 인구는 70여만 명, 주변 광역권을 포함하면 300여만 명. 콜로라도 전 인구의 60%가 덴버와 덴버 주변에 사는 셈이다. 외국인들이 록키 마운틴을 가려면 대부분 덴버시 중앙에 있는 유니온 역에서 시작한다.  자동차를 이용해 개인적인 록키 마운틴 여행도 가능하지만  유니온 역에서 출발하는 반일 관광 프로그램이나 전일 관광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게 편리하다. 가이드가 여행자들을 버스에 태워 록키 마운틴에서 가장 유명한 포인트로 안내한 뒤 다시 유니온 역으로 데려다 주는 프로그램이다. 나도 반일 프로그램에 예약해, 덴버 근교의 레드 락 극장과 해발 3000 미터에 위치한 에코 레이크 등을 돌아본 뒤 오후 2시 경 유니온 역에 도착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는 덴버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달리면 닿는 거리(70마일)에 있는데,  유명 포인트로는 '신들의 정원'과 4천미터가 넘는 고봉 '파이크스 피크'가 있다. 특이한 것은 이곳이 미국 공군의 핵심이라는 사실. 공군사관학교를 비롯 우주군 사령부 등이 여기에 있다. 전체 인구40여 만명 중 군인 비율이 거의 10%에 가깝고 그 배 이상의 예비역 군인들이 이곳에 산다. 군사부문이 이 지역의 경제를 좌우하는 것은 불문가지!

이번 콜로라도 여행에서는 덴버와 콜로라도 스프링스가 중심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떠났지만 돌아와 생각해 보니 스프링스를 떠나 아스펜으로 오는 길에서 만난 인디펜던스 패스가 또 하나의 중심이었다. 해발 3600미터가 넘는 고갯길을 올라 일망무제의 정상에서 록키 마운틴을 내려다 본 것은 이번 여행의 백미 중의 하나였다. 물론 이곳까지 오기 위해 탔던 24번 도로에서 본 주변 풍광도 잊을 수 없다. 

이제부터 콜로라도 여행을 사진을 보면서 설명해 보자. 수 백 장의 사진 중에서 콜로라도 여행을 대표할 만한 몇 장을 뽑아 보았다.
 

2023년 7월 28일 이 차를 운전해 콜로라도 여행에 나섰다. 차는 전날 솔트레이크 공항에 가서 빌려온 렌탈 카.

 

솔트레이크를 출발해 I-80을 타고 덴버로 향했다. 가는 길은 수 백 킬로를 가도 이런 길이 계속되었다. 와이오밍에서 콜로라도 경계를 넘어가자 목전에 산과 목초지가 나타나고 소와 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외지인들이 록키 마운틴 관광을 하려면 보통 덴버시 중앙에 있는 유니온 역에서 시작한다. 이곳에서 반일 혹은 전일 프로그램의 가이드 투어를 한다. 유니온 역은 콜로라도 역사의 산 증인이다. 역은 1881년 만들어져(덴버의 최초의 역은 1868년 만들어졌지만 곧 이 역으로 단일화 되었음) 미국의 동서 횡단열차의 중심역으로 역할을 했다. 최근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통해 역사 내부는 화려한 카페와 식당이 들어와 관광객들의 호주머니를 공략한다. 두 사람 먹을 샌드위치와 콜라 한 잔을 샀더니 50불(6만5천원)이 나갔다. 물가가 높다기 보다는 거의 강도 수준(?)에 가깝다. 이 역 건물에는 유서 깊은 호텔 크로포드가 있다.

 

여기는 콜로라도 주의회. 콜로라도 정치의 중심지다. 콜로라도는 1876년 state로 승격되었다. 이 해가 미국 독립 100주년이기 때문에 콜로라도주를 '백주년 주'(Centennial State)라고 부른다. 주의 크기는 26만 평방킬로미터, 남북한 면적보다 큰 주이나 인구는 500만 명에 불과하다. 콜로라도주의 남북으로 록키산맥이 관통하고 있어 평균 표고가 미국에서 가장 높다. 덴버를 마일 하이 시티라고 하는데 그것은 표고 1마일(1600미터)의 위치에 도시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특별히 의사당을 찾아간 이유는 마일 하이 시티 표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의사당 계단 어딘가에 그 표시가 있다고 해서 뙤약볓 아래에서 찾았으나 쉽게 발견하지 못했다. 포기하려던 참에 내 호기심을 하늘이 감동했는지 드디어 그 표시가 내 눈에 들어왔다. 위 두 번째 사진을 보면 계단에 조그만 동판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지점이 해발 1600미터가 되는 지점이다.

 

유니온 역에서 출발한 가이드 투어의 첫번째 목적지는 레드락스(Red Rocks). 덴버 시내에서 차로 30-40분 걸리는 곳에 사암으로 이루어진 산이 하나 있다. 거기에 로마식 극장(amphitheatre)을 만들었다. 규모도 상당히 큰데, 빽빽히 입장하면 1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 극장은 1930년대 대공황기의 공공사업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1941년 오픈했다. 객석 꼭대기에 올라가면 멀리 덴버시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이곳에서 미국과 유럽의 최고의 뮤지션들이 공연을 해왔다. 가장 유명한 공연 중 하나는 1964년 비틀즈 공연. 그러나 재미 있는 것은 이 지역 사람들이 비틀즈를 좋아하지 않았는지 비틀즈가 미국 투어를 하면서 유일하게 이곳에서는 표를 다 팔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역사를 알려면 공연장 입구에 마련된 레드락스 역사관을 찬찬히 훑어 보는 게 좋다.

 

여기가 바로 록키 마운틴을 찾아오는 사람들이라면 꼭 가고 샆어하는 에코 레이크이다. 덴버에서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곳인데, Mount Evans Scenic Byway 노상에 위치한다. 표고는 약 3200미터. 한 여름이지만 이곳에 서면 반팔 차림으로 있기가 다소 추울 정도로 선선함을 느낀다. 이곳은 과거 빙하가 녹아 호수가 된 곳이다. 여름도 좋지만 겨울에 인근 에반스산에 눈이 쌓였을 때 이곳에서 설경을 보면 또 다른 절경을 맛볼 수 있다.

 

저 멀리 보이는 민둥산이 파이크스 피크(4,302미터). 남부 록키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록키 산맥에는 4천미터가 넘는 산이 꽤 많다. 무려 54개! 이것을 부르는 말이 포티너(Fourteener). 14,000피트의 약어이다. 파이크스 피크는 포티너 중에서 대표주자. 원래 계획은 저 봉우리 끝까지 올라가는 것이었으나 고민 끝에 포기했다. 저기를 올라가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차로 올라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산악열차를 타고 정상 부근까지 가서 내린 다음 셔틀을 타고 올라가는 방법이다. 나는 차로 올라가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이곳저곳 자료를 찾아보니 초행자가 도전하긴 상당히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산 아래와 정상이 2,500미터 이상 차이가 있어 고산증이 나타날 수 있고, 차에 무리가 간다는 것이다. 내려 올 때는 브레이크를 자주 밟기 때문에 차가 과열되기 쉬워 중간에 관리사무소의 점검을 받아야 한다. 고민 끝에 올라가지 못하고 가장 잘 볼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았다. 그곳이 또 다른 목적지인 '신들의 정원'이었다. 저 사진은 신들의 정원에서 파이크스 피크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포인트에서 줌을 사용해 찍은 것이다.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파이크스 피크는 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신들의 정원'을 간 것은 소득이다. 이곳은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공공공원으로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800에이커가 넘는 큰 공원으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트레일을 따라 걷거나 차를 이용해 천천히 공원을 한 바퀴 돌면서 각 포인트에서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즐긴다. 신들의 정원 답게 이런 정원을 어떻게 인간이 만들 수 있겠는가. 수억 수천만년의 역사를 지닌 돌과 바위 그리고 산, 수많은 동식물이 이곳에서 서식하고 있다. 사람들은 신이 준 이 선물을 감사한 마음을 갖고 보존하며 즐겨야 한다. 이곳은 파이크스 피크의 뷰 포인트로도 유명하다. 운전 중 도로상에서 노루 한 마리를 만났다. 이 놈은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 창문을 내려 기념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를 떠나 아스펜으로 가는 길(24번 도로). 약 250킬로미터 구간은 한폭의 그림이었다. 특히 본격적으로 록키 마운틴으로 들어서기 전인 비스타 부에노에서 본 콜리젯 피크스(Collegiate Peaks)는 압권! (위의 두번째 , 세번째 사진) 이름이 특이한데, collegiate라는 말은 대학이란 의미가 있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 피크스의 봉우리 이름이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컬럼비아 등이다. 미국 사람들도 일류대학을 상당히 좋아하는 모양이다. 산 이름에 대학 이름을 붙이다니... 이 콜리젯 피크스는 중부 콜로리다의 록키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4천미터가 넘는 포티너(fourteener)가 20개나 포진되어 있다.

 

아스펜으로 가는 길(24번 도로)에서 얻은 수확은 인디펜던스 패스를 넘은 것. 이곳은 아스펜과 트윈 레이크 사이의 높은 고개로 표고 3,687미터. 특히 이곳은 미주대륙 분수령(Continental Devide)이 지나는 지점에 위치한다. Continental Devide는 북미의 베링해협에서 남미의 마젤란 해협까지 미주대륙 전체를 잇는 분수령이다. 한마디로 대륙의 척추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사실 이번 여행 전에 록키산맥에서 이 구간을 통과할 줄 몰랐다. 대충 지도를 보고 여정을 정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대박이었다. 고개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록키산맥의 위용은 그야말로 절경 중의 절경. 수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지만 사진만으로 그 절경을 전달하긴 어렵다. 백문이불여일견!

 

아스펜에 도착했다. 아스펜은 원래 콜로라도 은광 붐이 일어났을 때 광산촌으로 만들어진 곳이지만 붐이 사라진 20세기엔 스키 리조트로 유명해진 곳이다. 미국의 상류층과 부호들이 이곳을 좋아한다. 아스펜 인근에는 조그만 공항이 있는데 수 십대의 개인 전용기 격납고가 있다. 존 덴버도 한 때 여기서 살았고, 케네디 대통령 일가도 여기를 좋아했다. 1998년에 로버트 케네디의 아들 마이클이 여기서 스키를 타다가 사망한 것이 큰 뉴스가 되기도 했다. 부호들이 많이 오다보니 웬만한 호텔은 1박에 수 천 불의 숙박료를 받는다. 주차를 한 후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명풍 가게만 있어 나와는 정말 상관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징이 있다면 이곳을 찾는 이들은 99%가 백인이며, 그것도 날씬한 여성들만 거리를 활보한다는 점. 역시 몸매도 경제력과 관계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여기에 온 이상 차 한 잔은 마셔야겠다는 생각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바로 이집(맨 아래 사진상의 파라다이스 베이커리)이 유명하다고 해서 거기에서 커피 한 잔과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나도 잠시 미국의 부호 반열에 오른 느낌이다!

(2023. 8.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