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솔트레이크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1997년 가족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미국 대륙 동서 횡단에 나섰는데, 그때 솔트레에크에서 하룻밤을 잔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솔트레이크가 몰몬교의 본부가 있다는 정도의 정보만 가지고 시내 중심의 교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26년이 지나고 나서 이번에 솔트레에크에 와 보니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당시 솔트레이크는 다운타운이라고 해도 기억날만한 건물이 없었는데 이번에 보니 이 도시의 면모가 내 과거의 기억과는 꽤나 거리가 있었다. 26년이란 세월이 만든 변화인지 내가 제대로 기억을 못해서 그런지 알 길이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유타를 처음 방문하고 난 뒤 몇 년 후(2002년) 동계 올림픽이 이곳에서 열렸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그 때 상당한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도 그 때의 흔적을 도시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솔트레이크는 산으로 둘러싼 분지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이곳을 솔트레이크 밸리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표고는 평균 1300미터, 연간 강우량은 400밀리로 일종의 사막기후에 가깝다. 이곳은 수억 년 전 지각변동에 의해 융기되었고, 밸리에 가득찬 바닷물은 사막기후에 의해 점점 말라 육지가 되었으며, 남은 물로 이루어진 호수가 도시 북서쪽에 있는 그레이트 솔트 레이크다. 도시 동쪽은 와사치 산맥(록키산맥의 서쪽 끝)으로 이어져 표고 2천 미터 이상의 산이 끝없이 펼쳐진다. 이곳 산악지역에는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 20세기 들어와 많은 스키장들이 들어섰다. 그 중 대표적 스키 리조트가 파크 시티로 이곳이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의 주된 무대였다. 솔트레이크의 인구는 약 20만명에 불과하나 인근까지 합하면 대략 1백만명이 넘는다. 유타 인구가 3백만명인 것을 생각하면 유타주 주민 3분의 1이 이곳에 산다는 의미다. 유타주에서 솔트 레이크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이번 여행 중 솔트레이크에선 2주 정도를 머물었다. 큰딸 내외와 이곳저곳을 돌아보았고 시간 나는 대로 혼자 동네 산책을 했다. 이번 여름 전 세계적으로 닥친 폭염은 솔트레이크도 예외가 아니어 대낮은 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더웠다. 뙤약볕에 나가면 온도계는 금방 섭씨 40도를 웃돌았다. 하지만 이곳은 건조한 곳이라 그늘에만 가면 살만하다. 더욱 밤이 되면 온도는 급격히 떨어져 새벽녘에는 18-19도니 서늘한 기운까지 느껴지곤 했다. 2주간 경험한 솔트레이크는 이곳이 미국의 어느 도시보다 조용하고 평화스러우며 친절한 사람들이 많았다. 아마도 그것은 몰몬교라는 종교적 영향력이 사회 전체에 흐르는 데 기인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것만으론 설명하기 힘들다. 솔트레이크엔 몰몬교와 관계없이 사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여행객으로 왔다고 해도 해가 쨍쨍 내리쪼이는 가운데 함부로 나가기도 어려워 대낮엔 대학 도서관으로 피서(?)를 갔다. 딸내외가 있는 유타 대학 도서관은 이방인에게도 아무 제한없이 개방하고 있어 더위를 피하는 데에는 적지였다. 도서관은 방학인지라 학생들마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도서관을 둘러보니 학생들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이 돋보였다. 심지어 학생들이 운동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시설까지 갖춰 놓고 있다. 같이 간 아내는 대학 도서관의 수준이 이렇게까지 좋을 줄 몰랐다며 감탄한다. 유타 대학은 최근에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한 모양이다. 대학 건물 대부분이 최신식 건물인데, 모두 기부자 이름이 붙어 있었다. 특히 내가 자주 간 도서관의 이름(메리어트 라이브러리)이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라 물어보니 호텔업계의 황제 메리어트가 돈을 냈다고 한다. 그제서야 그가 유타 출신의 몰몬교도임을 알게 되었다. 유타대학은 원래 몰몬교도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1850)하였으나 처음부터 주립대학으로 출발하여 직접적으로 그 종교의 영항 하에 있지 않다. 교수들 상당수는 타주나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고 학생들도 몰몬과 관계 없는 사람들의 비중이 높다. 몰몬교의 강한 영향력 하에 있는 대학은 솔트레이크에서 30여 마일 떨어진 프로보에 있는 브리검 영 대학. 이곳은 사립대학으로 교직원은 물론 학생들도 대부분(90%)가 몰몬교도라고 한다.
유타하면 몰몬을 생각한다.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유타는 몰몬교도들이 개척한 곳이기 때문에 몰몬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러니 유타와 솔트레이크를 말함에 있어 몰몬을 건너 뛸 수 없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몰몬교가 어떤 종교인지 알고 싶었다. 한국 사람들은 몰몬교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일부다처제를 하는 시대착오적 종교? 애들 교육도 시키지 않고 문명을 거부한 채 외딴 곳에서 사는 반문명인들? 까만 양복에 흰 와이셔츠를 입고 거리에서 전도하는 뭔가 미심쩍은 미국인들? 많은 사람들에게 몰몬교는 기독교를 뿌리로 한 종교이지만 이단적인 요소가 강한 종교로 보일지 모른다. 과연 몰몬교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선 이것부터 확인해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후기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 약칭 LDS)를 몰몬교의 전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 LDS는 솔트레이크에 본부를 둔 몰몬교의 가장 핵심분파(denomination)이지만 몰본교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 이 말은 몰몬교에도 여러 종파가 있다는 말이다. 몰몬교는 1820년대 조셉 스미스라는 사람에 의해 뉴욕에서 시작되었다. 몰몬교는 성경과 조셉 스미스가 천사 모로나이로부터 받은 금판을 번역한 몰몬경전을 믿는데, 그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지상에서 복원한다는 것이다. 몰몬교도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영적 자녀이고, 죠셉 스미스를 통해 교회가 복원되었다는 것과 그의 후계자인 예언자(prophets)와 사도(apostles)에 의해 인도된다는 것을 믿는다. 한국 LDS가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하는 LDS의 핵심교리는 다음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예수님이 대속과 부활을 통해 온 인류를 구속하신 구세주임을 믿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른다. 이러한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기독교이다. 아울러, 신약시대 예수 그리스도가 세우셨던 초기 교회를 회복한 교회라는 점에서 초기 교회의 계승을 주장하는 가톨릭 교회나 이를 부정하고 개혁운동으로 설립된 개신교 등의 다른 기독교들과 구분된다."
잘은 모르지만 몰몬교도 18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미국 교회의 대각성 운동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시작된 새로운 영적 운동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각성 운동은 미국 건국 전후의 미국 교회의 형식주의와 합리주의에 한계를 느끼고 시작된 영성 운동이므로 몰몬교도 그 중 하나로 볼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미스는 정통 기독교에서 말하는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은 하나라는 믿음)를 받아들이지 않고 일부다처제를 교리의 중요 부분으로 설파함으로써 주류사회로부터 이단종교의 혐의를 받고 박해를 받게 된다. 조셉 스미스 사후 몰몬의 주류는 브리검 영의 지도 하에 그들의 땅을 찾아 서부로 이동했고 그 과정에서 중서부의 여러 주(유타, 와이오밍, 아이다호, 몬타나, 네바다 등)에 몰몬교도가 정착하게 된다. 마침내 브리검 영은 1847년 7월 24일 솔트레이트에 도착해 바로 거기가 그들이 정착해야 할 땅임을 선언한다.(유타주는 이 날을 주의 개척기념일로 매년 성대하게 기념한다). LDS는 브리검 영을 지도자로 한 몰몬교인 바, 그는 유타주에 들어온 이후 유타주의 각 지역을 개척했고 연방으로부터 유타주의 총독으로 인정을 받는다. 브리검 영 사후 유타는 미연방의 주로 편입(1895)되어 오늘에 이른다.
유타가 연방의 주로 편입된 후 LDS는 상당한 변화를 겪는데 우선 일부다처를 금하는 새로운 교리를 선포한다. 다만 LDS의 교리는 미국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가치를 대변한다. 알콜을 포함해 중독적인 기호품을 금하고, 엄격한 가족주의를 내세우기 때문에 동성애나 낙태 등을 포용하기 어렵다. 현재 유타의 인구 200만 중 40%가 몰몬(LDS)과 관련이 있어 몰몬 교도는 여전히 유타의 주류이지만 몰몬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그것은 현 솔트레이크 시장이 동성애자인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고, 솔트레이크 공원이나 거리에서 보는 많은 여성들의 자유로운 몸가짐에서도 그 변화를 읽을 수 있다. 다만 유타가 다른 주와 다른 것은 가족들의 나들이를 할 때 확연히 나타난다. 젊은 부부가 아이들을 셋 넷을 데리고 다니는 장면은 솔트레이크나 유타의 어떤 도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저출산으로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우리가 보기엔 딴 세상임이 분명하다.
솔트레이크에 있으면서 이곳저곳을 돌아보았지만 기억나는 것은 대부분 유타 대학과 관련된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유타대학 도서관 외에도 대학이 직접 관리하는 레드 뷰트 가든이라는 곳도 솔트레이크를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가볼만한 곳이다. 대학 뒤의 산자락에 파라다이스를 무색케 하는 정원을 만들어 놓았다. 해가 뉘엿뉘엿 내려가며 솔트레이크 시내 전체를 황금빛으로 물들일 때 정원의 벤치에 앉아 시내를 바라보면 여기가 과연 브리검 영이 찾은 시온의 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원에선 가끔 음악회도 열리는데 넓은 잔디밭에서 반짝이는 별을 보면서 열리는 공연은 분위기 자체만으로도 딴 세상에 온 느낌이다. 우리 가족은 7월 말 어느 저녁에 재즈 가수로 유명한 다이아나 크롤의 공연을 관람했다. 천 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족단위로 와서 간식을 즐기며 흥겹게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고 솔트레이크 사람들의 높은 문화수준을 느낄 수 있었다.
2주간 솔트레이크에 있으면서 저녁 무렵 혼자 동네 산책을 했다. 딸 내외가 사는 곳은 유타 대학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중산층 거주지역인데 저녁 산책을 하기엔 제격이었다. 집들은 대체로 100여 년 전에 세워진 것이지만 계속 보수해서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에 외관만 보아서는 언제 세워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건물 앞에 우뚝 선 가로수를 보면 이 동네가 적어도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곳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많은 나무들이 성인 두 사람이 안기 힘든 정도로 우람해 여름 뙤약볕을 가려주는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있었다. 산책을 하다 보면 솔트레이크가 몰몬의 성지라는 것을 잊게 하는 인상 깊은 집들이 여기저기에서 발견된다. 어떤 집 현관에는 성소수자의 연대를 의미하는 레인보우 깃발이 꽂혀 있고, 또 어떤 집 앞에는 지구를 살리자는 표어나 핵무기 반대 표어가 팻말에 쓰여 있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에 본 집앞엔 벤치 하나와 큰 우편함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호기심에 다가가 보니 우편함이 아니라 책 십 여 권이 들어 있는 투명 상자였다. 그 골목을 산책하는 사람들에게 그 벤치에 앉아 잠시라도 독서를 권하는 주인장의 마음 씀씀이가 여행객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 주었다.
자, 그럼 내가 찍은 사진을 통해 솔트레이크를 여행해 보자. 사진 아래에 쓴 설명을 읽으면 이 도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2023.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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