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2023 미국여행

2023 미국여행 4(몰몬교의 성지 솔트레이크를 가다)

박찬운 교수 2023. 8. 17. 11:09

 
내 인생에서 솔트레이크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1997년 가족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미국 대륙 동서 횡단에 나섰는데, 그때 솔트레에크에서 하룻밤을 잔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솔트레이크가 몰몬교의 본부가 있다는 정도의 정보만 가지고 시내 중심의 교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26년이 지나고 나서 이번에 솔트레에크에 와 보니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당시 솔트레이크는 다운타운이라고 해도 기억날만한 건물이 없었는데 이번에 보니 이 도시의 면모가 내 과거의 기억과는 꽤나 거리가 있었다. 26년이란 세월이 만든 변화인지 내가 제대로 기억을 못해서 그런지 알 길이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유타를 처음 방문하고 난 뒤 몇 년 후(2002년) 동계 올림픽이 이곳에서 열렸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그 때 상당한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도 그 때의 흔적을 도시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솔트레이크는 산으로 둘러싼 분지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이곳을 솔트레이크 밸리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표고는 평균 1300미터, 연간 강우량은 400밀리로 일종의 사막기후에 가깝다. 이곳은 수억 년 전 지각변동에 의해 융기되었고, 밸리에 가득찬 바닷물은 사막기후에 의해 점점 말라 육지가 되었으며, 남은 물로 이루어진 호수가 도시 북서쪽에 있는 그레이트 솔트 레이크다. 도시 동쪽은 와사치 산맥(록키산맥의 서쪽 끝)으로 이어져 표고 2천 미터 이상의 산이 끝없이 펼쳐진다. 이곳 산악지역에는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 20세기 들어와 많은 스키장들이 들어섰다. 그 중 대표적 스키 리조트가 파크 시티로 이곳이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의 주된 무대였다.  솔트레이크의 인구는 약 20만명에 불과하나 인근까지 합하면 대략 1백만명이 넘는다. 유타 인구가  3백만명인 것을 생각하면 유타주 주민 3분의 1이 이곳에 산다는 의미다. 유타주에서 솔트 레이크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이번 여행 중 솔트레이크에선 2주 정도를 머물었다. 큰딸 내외와 이곳저곳을 돌아보았고 시간 나는 대로 혼자 동네 산책을 했다. 이번 여름 전 세계적으로 닥친 폭염은 솔트레이크도 예외가 아니어 대낮은 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더웠다. 뙤약볕에 나가면 온도계는 금방 섭씨 40도를 웃돌았다. 하지만 이곳은 건조한 곳이라 그늘에만 가면 살만하다. 더욱 밤이 되면 온도는 급격히 떨어져 새벽녘에는 18-19도니 서늘한 기운까지 느껴지곤 했다.  2주간 경험한 솔트레이크는 이곳이 미국의 어느 도시보다 조용하고 평화스러우며 친절한 사람들이 많았다. 아마도 그것은 몰몬교라는 종교적 영향력이 사회 전체에 흐르는 데 기인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것만으론 설명하기 힘들다. 솔트레이크엔 몰몬교와 관계없이 사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여행객으로 왔다고 해도 해가 쨍쨍 내리쪼이는 가운데 함부로 나가기도 어려워 대낮엔 대학 도서관으로 피서(?)를 갔다. 딸내외가 있는 유타 대학 도서관은 이방인에게도 아무 제한없이 개방하고 있어 더위를 피하는 데에는 적지였다. 도서관은 방학인지라 학생들마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도서관을 둘러보니 학생들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이 돋보였다. 심지어 학생들이 운동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시설까지 갖춰 놓고 있다. 같이 간 아내는 대학 도서관의 수준이 이렇게까지 좋을 줄 몰랐다며 감탄한다. 유타 대학은 최근에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한 모양이다. 대학 건물 대부분이 최신식 건물인데, 모두 기부자 이름이 붙어 있었다. 특히 내가 자주 간 도서관의 이름(메리어트 라이브러리)이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라 물어보니 호텔업계의 황제 메리어트가 돈을 냈다고 한다. 그제서야 그가 유타 출신의 몰몬교도임을 알게 되었다. 유타대학은 원래 몰몬교도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1850)하였으나 처음부터 주립대학으로 출발하여 직접적으로 그 종교의 영항 하에 있지 않다. 교수들 상당수는 타주나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고 학생들도 몰몬과 관계 없는 사람들의 비중이 높다. 몰몬교의 강한 영향력 하에 있는 대학은 솔트레이크에서 30여 마일 떨어진 프로보에 있는 브리검 영 대학. 이곳은 사립대학으로 교직원은 물론 학생들도 대부분(90%)가 몰몬교도라고 한다.

유타하면 몰몬을 생각한다.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유타는 몰몬교도들이 개척한 곳이기 때문에 몰몬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러니 유타와 솔트레이크를 말함에 있어 몰몬을 건너 뛸 수 없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몰몬교가 어떤 종교인지 알고 싶었다. 한국 사람들은 몰몬교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일부다처제를 하는 시대착오적 종교? 애들 교육도 시키지 않고 문명을 거부한 채 외딴 곳에서 사는 반문명인들? 까만 양복에 흰 와이셔츠를 입고 거리에서 전도하는 뭔가 미심쩍은 미국인들? 많은 사람들에게 몰몬교는 기독교를 뿌리로 한 종교이지만 이단적인 요소가 강한 종교로 보일지 모른다. 과연 몰몬교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선 이것부터 확인해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후기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 약칭 LDS)를 몰몬교의 전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  LDS는 솔트레이크에 본부를 둔 몰몬교의 가장 핵심분파(denomination)이지만 몰본교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 이 말은 몰몬교에도 여러 종파가 있다는 말이다. 몰몬교는 1820년대 조셉 스미스라는 사람에 의해 뉴욕에서 시작되었다. 몰몬교는 성경과 조셉 스미스가 천사 모로나이로부터 받은 금판을 번역한 몰몬경전을 믿는데, 그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지상에서 복원한다는 것이다. 몰몬교도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영적 자녀이고, 죠셉 스미스를 통해 교회가 복원되었다는 것과 그의 후계자인 예언자(prophets)와 사도(apostles)에 의해 인도된다는 것을 믿는다. 한국 LDS가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하는 LDS의 핵심교리는 다음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예수님이 대속과 부활을 통해 온 인류를 구속하신 구세주임을 믿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른다. 이러한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기독교이다. 아울러, 신약시대 예수 그리스도가 세우셨던 초기 교회를 회복한 교회라는 점에서 초기 교회의 계승을 주장하는 가톨릭 교회나 이를 부정하고 개혁운동으로 설립된 개신교 등의 다른 기독교들과 구분된다."

잘은 모르지만 몰몬교도 18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미국 교회의 대각성 운동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시작된 새로운 영적 운동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각성 운동은 미국 건국 전후의 미국 교회의 형식주의와 합리주의에 한계를 느끼고 시작된 영성 운동이므로 몰몬교도 그 중 하나로 볼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미스는 정통 기독교에서 말하는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은 하나라는 믿음)를 받아들이지 않고 일부다처제를 교리의 중요 부분으로 설파함으로써 주류사회로부터 이단종교의 혐의를 받고 박해를 받게 된다. 조셉 스미스 사후 몰몬의 주류는 브리검 영의 지도 하에 그들의 땅을 찾아 서부로 이동했고 그 과정에서 중서부의 여러 주(유타, 와이오밍, 아이다호, 몬타나, 네바다 등)에 몰몬교도가 정착하게 된다. 마침내 브리검 영은 1847년 7월 24일 솔트레이트에 도착해 바로 거기가 그들이 정착해야 할 땅임을 선언한다.(유타주는 이 날을 주의 개척기념일로 매년 성대하게 기념한다). LDS는 브리검 영을 지도자로 한 몰몬교인 바, 그는 유타주에 들어온 이후 유타주의 각 지역을 개척했고 연방으로부터 유타주의 총독으로 인정을 받는다. 브리검 영 사후 유타는 미연방의 주로 편입(1895)되어 오늘에 이른다.

유타가 연방의 주로 편입된 후 LDS는 상당한 변화를 겪는데 우선 일부다처를 금하는 새로운 교리를 선포한다. 다만 LDS의 교리는 미국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가치를 대변한다. 알콜을 포함해 중독적인 기호품을 금하고, 엄격한 가족주의를 내세우기 때문에 동성애나 낙태 등을 포용하기 어렵다. 현재 유타의 인구 200만 중 40%가 몰몬(LDS)과 관련이 있어 몰몬 교도는 여전히 유타의 주류이지만 몰몬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그것은 현 솔트레이크 시장이 동성애자인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고, 솔트레이크 공원이나 거리에서 보는 많은 여성들의 자유로운 몸가짐에서도 그 변화를 읽을 수 있다. 다만 유타가 다른 주와 다른 것은 가족들의 나들이를 할 때 확연히 나타난다. 젊은 부부가 아이들을 셋 넷을 데리고 다니는 장면은 솔트레이크나 유타의 어떤 도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저출산으로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우리가 보기엔 딴 세상임이 분명하다.

솔트레이크에 있으면서 이곳저곳을 돌아보았지만 기억나는 것은 대부분 유타 대학과 관련된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유타대학 도서관 외에도 대학이 직접 관리하는 레드 뷰트 가든이라는 곳도 솔트레이크를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가볼만한 곳이다. 대학 뒤의 산자락에 파라다이스를 무색케 하는 정원을 만들어 놓았다. 해가 뉘엿뉘엿 내려가며 솔트레이크 시내 전체를 황금빛으로 물들일 때 정원의 벤치에 앉아 시내를 바라보면 여기가 과연 브리검 영이 찾은 시온의 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원에선 가끔 음악회도 열리는데 넓은 잔디밭에서 반짝이는 별을 보면서 열리는 공연은 분위기 자체만으로도 딴 세상에 온 느낌이다. 우리 가족은 7월 말 어느 저녁에 재즈 가수로 유명한 다이아나 크롤의 공연을  관람했다. 천 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족단위로 와서 간식을 즐기며 흥겹게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고 솔트레이크 사람들의 높은 문화수준을 느낄 수 있었다.

2주간  솔트레이크에 있으면서 저녁 무렵 혼자 동네 산책을 했다. 딸 내외가 사는 곳은 유타 대학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중산층 거주지역인데 저녁 산책을 하기엔 제격이었다. 집들은 대체로 100여 년 전에 세워진 것이지만 계속 보수해서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에 외관만 보아서는 언제 세워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건물 앞에 우뚝 선 가로수를 보면 이 동네가 적어도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곳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많은 나무들이 성인 두 사람이 안기 힘든 정도로 우람해 여름 뙤약볕을 가려주는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있었다. 산책을 하다 보면 솔트레이크가 몰몬의 성지라는 것을 잊게 하는 인상 깊은 집들이 여기저기에서 발견된다. 어떤 집 현관에는 성소수자의 연대를 의미하는 레인보우 깃발이 꽂혀 있고, 또 어떤 집 앞에는 지구를 살리자는 표어나 핵무기 반대 표어가 팻말에 쓰여 있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에 본 집앞엔 벤치 하나와 큰 우편함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호기심에 다가가 보니 우편함이 아니라 책 십 여 권이 들어 있는 투명 상자였다. 그 골목을 산책하는 사람들에게 그 벤치에 앉아 잠시라도 독서를 권하는 주인장의 마음 씀씀이가 여행객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 주었다.

자, 그럼 내가 찍은 사진을 통해 솔트레이크를 여행해 보자. 사진 아래에 쓴 설명을 읽으면 이 도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솔트레이크 시내 중심에 있는 템플 스퀘어 내의 회관. 이 광장에는 성전(Temple), 성막(Tabernacle), 회관(Assembly Hall), 갈매기 기념비 등이 있다. 성전은 현재 대규모 리노베이션 중이다. 성막에서는 LDS 합창단의 합창이 공연되는데 100년 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매주 목요일에 합창 연습이 있는 데 많은 관광객들이 이 연습을 보러 몰려든다.

 

솔트레이크 템플, 현재 리노베이션 중이라 이 성전에 들어가지 못했다. 사진은 위키피디아 자료 사진.

 

바로 이 사람이 몰몬교를 창시한 1대 회장(president) 죠셉 스미스. 몰몬교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Temple Square 근처의 교회역사박물관에 가는 게 좋다. 초기 형성과정과 최근까지의 발전에 대해 연대기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몰몬교의 역사에 죠셉 스미스 이후 브리검 영만큼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없다. LDS의 2대 회장으로 이 사람이 죠셉 스미스 사후(1844) 성도를 이끌고 솔트 레이크에 와 오늘의 유타를 만들었다. 그는 원래 목수 출신이지만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로 몰몬교를 새로운 시대의 종교로 만들었다. 그가 지도한 성도가 이제 전세계적으로 1700만명을 헤아리니 몰몬교로선 예수 이후의 바울과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의회 의사당인 State Capitol 내에 브리검 영 동상이 인상적으로 서 있다.

 

몰몬 교도들은 솔트 레이크에 도착하고 나서 바로 대학 설립에 나선다. 이것이 바로 템플 가까이 산자락 아래에 만들어진 유타대학. 유타 대학은 미국 서부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연구중심 대학이다. 17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유타를 이끈 인재의 산실이 되었다. 현재 학생수는 대학원 생 포함 3만4천명. 유타 대학은 2014년 인천 송도에 아시아 캠퍼스를 오픈해 운영하고 있다. 위의 사진(위키피디아 자료사진)은 블록 유(Block U)라고 불리는 유타대의 상징. 마운트 반 코트에 설치된 대형 문자 조형물이다.

 

유타 대학 캠퍼스는 솔트 레이크 밸리의 한쪽 마운트 반 코트 (Mount Van Cott)자락에 위치한다. 사진은 캠퍼스 내에서 산쪽을 보고 찍은 것임

 

유타대학 중앙도서관. 유타대는 최근 호텔업계의 황제 메리어트의 기부로 최적의 연구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현대적 감성의 도서관을 만들었다. 도서관 내부를 들어가면 그저 하루 종일 도서관에 있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난다. 공부를 하지 않고 잠을 자도 좋다. 심지어는 공부하며 운동할 수 있는 기구도 갔다 놓았다. 나도 신기해 잠시 그것 위에 올라가 걸으면서 잠시 도서관 밖을 유심히 바라 보았다. 방학기간이지만 점심 무렵이 되니 도서관 밖에는 푸드 트럭이 한 대 도착했다. 요즘 인기 있는 브랜드 '벤토'라는 것인데, 퓨전 일본음식을 판다. 9불 정도의 덧밥류를 사서 도서관 안으로 가지고 와서 독서를 하며 밥을 먹는 학생들을 다수 보았다.

 

여기가 바로 유타 대학 인근의 레드 뷰트 가든이다. 유타대가 직접 관리하는 데 일반인은 유료이고 교직원과 학생들은 무료이다. 내가 세계 여러 나라의 정원을 보았지만 이 정원만큼 독특한 정원은 보지 못했다.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에 정원이 있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산자락의 상당한 부지 위에 자라고 있는 온갖 식물은 삭막할 것 같은 솔트 레이크에 무한한 청량감을 뿜어낸다. 내 생각으론 이곳의 컨셉은 파라다이스다. 정원 어디에 있든 고요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세파에 쪄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잠시라도 쉼을 가질 수 있다면 정화되는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곳곳에 솔트레이크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석양이 금빛으로 대지를 수놓을 때 이곳 벤치에 앉아 시내를 보면 브리검 영이 1847년 7월 24일 이곳에 도착해 "여기가 바로 그곳이다"(This is the right place)라고 외쳤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가 바로 그가 발견한 새로운 시온의 땅이었던 것이다.

 

이번 여름(7월 말) 이곳 레드 뷰트 가든에선 재즈 가수 다이아나 크롤의 공연이 있었다. 내가 보기엔 솔트 레이크의 웬만한 인물들은 그 공연을 보기 위해 전부 출동한 것 같이 보였다. 대부분 가족단위로 공연 전 일찌감치 와서 가지고 온 음식과 음료수를 마시면서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유타주는 마켓에서 술도 잘 안파는데 관중 중에는 한국산 소주도가지고 와서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하늘의 별은 빛나고 바람은 선선했다. 여유 있는 솔트 레이크 시민들의 일상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기분 좋은 밤이었다.

 

미국의 주 의사당은 거의 대부분 비슷하다. 워싱턴 디시의 캐피톨을 옮겨다 놓은 듯 건물 모양도 유사하다. 유타주는 총면적이 22만 평방킬로미터로 한반도와 거의 같은 크기이지만 인구는 3백만에 불과하다. 1896년 연방의 45번째 주로 편입되었다.
 
시내에 있는 리버티 파크. 저녁 무렵 나가보니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마침 그날이 7월 24일. 유타주 최대의 경축일은 파이오니어 데이. 1847년 브리검 영이 몰몬교도를 이끌고 이곳 솔트레이크 밸리에 도착해, 바로 여기가 그들이 찾고 있던 땅이라고 외친 날이다. 솔트레이크는 이 날을 기념하여 7월 24일을 전후로 여러 행사를 한다. 이번 경축일에는 리버티 파크에서 야간 드론쇼가 개최도었다.

 

솔트레이크를 가는 경우 놓칠 수 없는 곳이 보너빌이라는 소금평원(Bonneville Salt Flats). 솔트레이크에서 I-80을 타고 서쪽으로 두어 시간 몰면 고속도로 바로 옆으로 거대한 소금사막이 보인다. 그레이트 솔트레이크 한쪽이 완전 증발해 이렇게 소금평원이 된 것이다. 이곳을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에 비견하는데 저녁 무렵에 오면 석양의 그림자를 이용해 환상적인 사진을 다양하게 찍을 수 있다. 지난 7월 말 우리 가족이 이곳에 도착하니 30-40명의 관광객이 있을 뿐 조용했다. 나도 잠시 시간을 내 소금 평ㅈ원 한 가운데로 천천히 걸어갔다. 이곳은 속도감을 즐기는 미국인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차와 오토바이들이 경쟁하는 장소로도 이용된다고 한다. 1960년 미키 톰슨은 시속 654킬로로 차를 몰았다고 한다. 경이적인 기록이다!

 

 
나는 2주간 솔트레이크에 묵으면서 자주 산책을 했다. 딸 내외가 사는 동네는 평범한 중산층이 사는 주택가인데 동네가 형성된 것은 적어도 100년 이상이 된다고 한다. 대부분 나무집이라 쉽게 낡을 것 같지만 수리만 제대로 하면 100년을 버티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많은 집들이 수리를 잘해 그다지 헌집 같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집집마다 앞에 큰 고목이 한 그루씩 서 있는데 언뜻 보아도 100년 이상의 수령을 자랑하는 우람한 고목이다. 이 고목들로 동네는 마치 숲속에 들어가 있는듯 하다. 솔트레이크에 이런 나무가 많은 것은 강한 햇빛 때문에 그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된다. 여름 철 대낮에 나무가 없다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기온이 올라간다. 동네를 산책하다가 보니 집집마다 나름 삶의 철학을 읽을 수 있는 것이 보였다. 어떤 집은 집 앞에 반핵구호나 환경보호 구호를 붙여놓기도 하고, 또 어떤 집은 성소수자 임을 표시하는 레인보우 깃발을 꽂아 두고 있었다. 가장 재미 있었던 집은 사진 맨 아랫집인데 벤치와 함께 무슨 상자를 설치해 놓았다. 가서 보니 책을 넣은 상자. 행인들에게 잠시 그곳 벤치에 앉아 독서를 하라는 것이다. 집주인의 여유와 친절이 부러웠다. 나도 두 번이나 이 벤치에 앉아 상자에서 책을 뽑아 잠시나마 독서를 했다.

(2023.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