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문학 26

노년, 그 비참함에 대한 반론

키케로, 노년의 비참함에 대해 반론하다 젊은 시절엔 나이 한 살이 추가되면 기뻣다. 어른 되어 가는 게 뿌듯했다. 지금은? 쓴 웃음만 나온다. 이제 50대 후반을 향해 나아가니 어딜 가도 내가 선배라고 인사할 사람들이 눈에 쉽게 띄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나이가 들어 버린 것이다. 어머님은 십 수 년 전에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이제 구순을 바라보시는 연세다. 장인 어른은 작년 초 오랜 병상을 이기지 못하시고 소천하셨고 장모님은 간병인의 수발을 받으시며 하루하루를 보내신다. 몇 년 전부터는 대학동기 자녀 결혼식에 참석하고 있다. 그 집 아이나 내 집 아이나 다 같은 또래이니 내게도 이제 발등의 불이다. 자식의 짝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시기가 온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불면의 밤이 많아지는 때다. 생노..

<사망추정시각> 원죄를 낳는 일본 형사사법절차를 고발하다

원죄를 낳는 일본 형사사법절차를 고발하다-이가라시 변호사님께 드리는 헌사- 이가라시 후다바 변호사의 추리소설 , 이 소설은 일본에서 발생하는 소위 원죄사건(사건 용의자가 고문 등을 받아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려 유죄가 된 사건)을 추리소설화한 것이다. 일본의 후진적인 형사절차와 인권침해를 이 한 권의 소설로 고발한 것이다. 이번 강연이 끝난 후 이가라시 변호사가 내게 한 권을 가지고 와서 나는 호텔에서 단숨에 읽었다. 소설의 저자로 된 사쿠 다스키는 이가라시 변호사의 필명임 일변연 초청 강연을 마치고 일본 변호사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헤어질 무렵 이가라시 변호사가 가방 속에서 책 세 권을 꺼내 내게 내 놓는다. 모두 그가 쓴 책들이다. 두 권은 형사법 관련 전문서적, 한 권은..

독서가 취미라고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어보셨습니까?

독서가 취미라고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어보셨습니까? 독서가 취미라고요?“당신의 취미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예, 제 취미는 독서입니다”라고 답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취미를 중국어로 아이하오(愛好)라고 하니, 독서가 취미라는 분은 분명 책 읽는 것을 즐기고 좋아할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아니, 그는 고통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정신적으로는 마조키스트입니다. 너무 과한 이야기인가요? 물론 독서 중에는 즐길 수 있는 책들이 있습니다. 어떤 책은 말 그대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약간의 성적 판타지가 있는 책들은 독서 중에도 몸의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책을 읽으면서 즐겁다고 한다면 저도 단박에 그렇다고 할 것입..

별이 있는 한 우주는 아름답고, 인간이 있는 한 세상은 아름답다

별이 있는 한 우주는 아름답고, 인간이 있는 한 세상은 아름답다--김갑수의 신작 을 읽고--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지적 호기심은 나를 존재케 하는 원동력이다. 그런 것 때문인지 손에 책이 들려 있지 않으면 불안할 때가 많다.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고 아무리 읽어도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 부족한 독서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분야는 역시 문학이다.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오랫동안 문학은 내게 지식도 교양도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생각했다.그런 내가, 작년부터인가, 부쩍 소설을 많이 읽는다. 아마도 이건 나이 탓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단편적인 것보다는 종합적인 것, 이성적인 것보다는 감성적인 것을 찾는다. 전문적인 것도 좋지만 그것만으론 삶의 본질적인 의문을 풀지 못한다. 이제 내가 읽어야 할..

소설가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하여

소설가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하여 내가 작가, 그 중에서도, 소설가에 대하여 무엇을 알랴. 이제껏 읽은 소설이 얼마나 된다고 작가에 대하여 말을 하랴. 작가는 나와는 무관한 사람이고, 피안의 세계에서 사는 별스런 인간이라고만 여겨왔다. 그럼에도 오늘 작가에 대해 간단히 말하고자 한다. 2년 전 우리 곁을 떠난 작가 최인호의 추모집 를 읽고 나니 무언가 하고픈 말이 있기 때문이다. 최인호에 대해선 호불호가 갈린다. 어떤 이는 그에 대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유려한 문체를 구사하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서 인간본질을 추구한 문호라고 극찬한다. 또 누구는 그를 70-80년대 엄혹한 세상에서, 저항정신이라는 작가정신을 외면한 채, 오로지 인기영합의 대중소설만 쓴 삼류작가라고 혹평한다. 나는 여기에서 그가..

<그리스인 조르바> 어록집

어록집 크레타 섬의 카잔차키스 묘지, 사진 김원일 제공 올해가 얼마 안남았다. 잠시 한 해를 회상해 보니 한 권의 책이 가슴 속에 큰 여운으로 남아 있다. (카잔차키스, 이윤기 옮김). 몇 년 전 손에 잡았다가 웬지 내가 읽을 책이 아니라는 생각에, 책장에 그냥 꽂아버렸는데, 올해 무슨 바람이 불었는 지 그 책을 다시 들었다. 심란한 마음이 가득했던 때였다. 그런데, 이 책이 듣던대로 보통 소설이 아니었다. 명불허전! 책장을 덮을 때 마음이 애잔해졌다. 조르바! 그 사람이 웬지 남이라 여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책을 펴고 내게 특별한 감상을 주었던 부분을 찾아 메모를 했다. 잊지 않기 위해... 오늘 다시 그것을 펴 이곳에 옮긴다. 에서 작가인 카잔차키스와 소설의 주인공인 조르바가 한 이야기를 들어보..

법률가가 문학을 가까이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법률가가 문학을 가까이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지난 한 달 동안 과 완역본을 읽었습니다. 즐겁기도 했지만 순간순간 고통도 경험한 장정이었습니다. 아직도 저는 소설 속에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저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습니다. "나는 이 바쁜 와중에 왜 이런 책들을 읽었을까?" 어제 밤 문득 이런 생각을 하다가 새로 배달된 책 한 권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마사 누스바움의 . 이 책은 얼마 전 저의 동학이자 페친인 채형복 교수님(경북대 로스쿨 국제법 교수이자 시인)이 소개로 알게 되었습니다. 누스바움은 현존하는 미국 최고의 철학자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분입니다. 이분은 정의와 인권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철학자입니다. 그런 이유로 저의 강의에도 곧잘 언급되는 분입니다. 제가 보기엔 누스바움은..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야, 이놈아! 그런 좆같은 인생 엿이나 먹어라-마루야마 겐지의 - 남북의 군사충돌 공포 속에 하루를 보내면서,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산문집 를 읽었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오늘 아침 경향신문에 나온 이 분 인터뷰 때문이었다. 가장 집중이 잘 되는 화장실에서(ㅋㅋㅋ 이게 제 병임) 이 기사를 한 자도 빼지 않고 읽었다. 가슴에 와 닿는 게 많았다. 당장 마루야마의 책을 주문했다. 이 양반 책이 이렇게 많이 번역된 걸 오늘에서야 알았다. 저녁 무렵 책 7권이 도착했다. 그중에서 오늘 인터뷰 기사와 가장 관련 있는 위 책부터 책장을 넘겼다. 200여 쪽의 책을 단숨에, 그럼에도 요소요소에 밑줄을 쳐가면서, 읽었다. 오랜만에 접하는 묵직한 글이다. 내용 전체를 다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그가..

나는 길들지 않는다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고 누구도 지배하지 않는다 이번 주말은 오로지 마루야마 겐지와 시간을 보냈다. 어제 를 읽은 후, 연 이어 그 전작인 까지 읽었다. 두 책을 읽어보니 마루야마의 그 ‘독한 인생론’이 확연히 내 눈 앞에 펼쳐진다. 이런 기억은 잊지 않는 게 좋다. 할 수만 있다면 죽을 때까지 내 기억 한편에 살아 있어야 한다. 그것 때문에 책을 손에서 떼자마자 그 핵심을 더듬는다. 그가 말하는 핵심 키워드는, 에서 보았듯이, 독립, 자립, 자유다. 그는 절대적인 독립, 절대적인 자립, 절대적인 자유를 추구한다. 그의 말에서 저항감을 느꼈는가? 그렇다면 일찌감치 이 책을 덮으라. 그의 말에서 강한 울림을 느꼈는가? 그렇다면 끝까지 이 책을 읽으라. 당신의 삶에 결단을 내릴 날이 올 것이다. 한마디로 마..

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

어떻게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나는 단조로운 사람이다. 누구처럼 풍류도 즐기지 못하고, 잡기에 능하지도 않다. 돈깨나 벌고 사회적 지위를 갖추면 개나 소나 다 한다는 ‘공’도 치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은 교수로서 해야 하는 연구와 강의 그리고 부수된 사회적 참여를 제외하고는,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 글을 쓰는 것, 마냥 걷는 것, 그리고 시간이 있을 때 여행을 가는 것뿐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읽고 쓰고 걷는 것’이 나의 일과이자 삶이다. 나는 내 삶의 방식을 바꿀 생각이 없다. 이제까지 살아온 대로 앞으로도 살 것이 분명하다. 비록 그것이 남에겐 그리 흥미로운 삶으로 보이지 않을지라도 나는 그것을 운명, 즐거운 운명으로 받아들이겠다. 한편으로 깊이 생각하고, 또 한편으론 땀을 흘리겠다. 그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