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지혜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한국적 민주주의’를 읽다

박찬운 교수 2015. 9. 27. 04:39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한국적 민주주의’를 읽다


88올림픽도로를 타고 여의도를 지나다 보면 우람하게 서 있는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이 보입니다. 여러분은 그 건물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저는 그럴 때마다 한 마디를 합니다. “저 국적 없는 의사당 건물을 보라.”


국회의사당이 준공된 것은 1975년. 당시 몇 몇 건축가들이 이 의사당 건축에 참여하여 설계안을 제출했습니다. 결국 최종안은 몇 작품이 절충되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 어떤 응모작품에도 돔 설계는 들어가 있지 않았습니다. 돔이 들어간 것은 건축가들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권력자들의 아이디어였습니다. 당시 건축에 참여했던 건축가들은 원 설계가 평지붕인데 어떻게 거기에 돔을 올리냐면서 극력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권력자들의 귀에 그것이 들어갈 리 없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알아보기 위해 오래된 신문을 찾아보았습니다. 마침 한 신문에 그에 대한 기사가 나와 있더군요. 그 부분을 여기에 옮깁니다.


<돔>얹져야 하나

평지붕으로 설계됐던 국회의사당 신축설계가 8각형 돔을 올려붙이는 방향으로 억지 변경되면서 최근 건축가 사회를 아연실색하게 하고 있다. 건축가협회(회장 배기형)는 어처구니없는 이번 일이 “외국에 가보니 돔이 있는 건물이 좋아 뵈더라”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현대건축문화를 모르는 얕은 취향에 의한 것이었다”고 지적하면서 “애초 평지붕으로 설계되었던 것에 억지로 돔을 올려붙인다면 보기에 딱한 건물이 되고 말 것”이란 결론과 함께 그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경향신문, 1969. 5. 28.)


아마도 권력자들이 해외 나들이를 하면서 본 선진국의 돔 의사당이 너무도 부러웠던 모양입니다. 그들에겐 우리 건축가들이 만들어 놓은 설계안이 심심했던 것이지요. 이런 말을 했을지 모릅니다. “우리나라 의사당도 미국 의사당처럼 모자(돔) 한 번 씌우지?” 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언뜻 보면 그리스 신전 모양ㅡ의사당의 외부 열주는 경회루의 석주를 본떴다고 하나 전체 모습은 신전 모양이지 한국의 어떤 전통 건축물도 의사당의 외부 열주를 연상시키는 것은 없다ㅡ의 건물에 거대한 돔 하나가 졸지에 올려졌습니다. 그리스의 신전과 로마의 판테온이 한국에 와서 한국 특유의 비빔밥 문화에 의해 즉석 결혼을 해 버린 셈이지요. 건축도 권력자들의 놀음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던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이것이 민주주의가 한국에 들어와 ‘한국적 민주주의’로 변형된 모습입니다.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을 보면서 저는 베를린에서 가서 본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을 떠올립니다. 첨부한 사진을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그 의사당입니다. 여담이지만, 이 사진을 찍기 위해 고생 좀 했습니다. 의사당 앞 잔디 광장에서 추위에 떨며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렸거든요. 날이 흐려 제가 가지고 간 스마트 폰으로는 도저히 제대로 된 사진이 나오질 않는 겁니다(이제 돈 좀 들여 제대로 된 사진기 하나 마련해야겠습니다. 명색이 문명기행가인데 똑똑한 사진기 하나 없이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찍고 다닌다니 말이 됩니까? 여하튼 수 십 장을 찍고 또 찍으니 그제서야 몇 장 쓸 만한 걸 건졌습니다. 여기 사진은 그 중 하나입니다. 독자들에게 드리는 저의 조그만 선물입니다.


이 의사당의 전신은 원래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하고 19세기 말 지은 제국의회 빌딩입니다. 통독 이후 수도를 본에서 베를린으로 옮기면서 연방의회의 의사당으로 리모델링한 것이지요. 1990년대 의사당을 리모델링하면서 제일 큰 논란은 종래의 권위적인 의사당 돔을 철거하고 여기에 유리 돔을 얹을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결국 이 기상천외한 유리 돔은 1999년 독일 연방의회의 입주와 함께 완성되어 독일 국민 아니 전 세계 관광객의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이 유리 돔은 지금 누구나 올라가 밑을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이 바로 의사당 대 회의실입니다. 국사에 여념이 없는 독일 국회의원들을 독일 국민들은ㅡ물론 저 같은 관광객까지ㅡ 낱낱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독일 국회의원들은 국민들로부터 철저히 감시 받기 위해, 또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 유리 돔을 자진하여 설치한 것입니다. 독일 정치인들의 민주의식을 엿 볼 수 있는 대목이지요.


한국의 국회의사당의 돔과 독일 국회의사당의 돔,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단지 국적 없는 돔, 건축 양식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돔이 올라갔다는 것 그 것 하나일까요? 그것 하나라면 그저 웃고 넘어가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양국 정치인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누가 이 나라의 주인인가의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의 의미, 바로 그것을 여의도 의사당 돔을 바라 보면서 생각한다면 그것을 저만의 자학이라고 쉽게 폄하할 수 있을까요?

(이 글은 제 책 <로마문명 한국에 오다> 일부를 페북 글로 다시 쓴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이 사진은 제가 직접 찍은 겁니다. 가끔 여의도 갈 때마다 의사당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이런 사진을 찍으려면 도로 한 가운데에서 찍어야 합니다. 이 사진 신호등에 잠시 쉴 때 재빨리 내려 찍은 겁니다.


베를린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 이 사진은 2년 전 겨울에 찍었습니다.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하고 바람은 불고 ... 저 잔디 밭에 한 시간을 돌아다니며 저 사진을 찍은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