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지혜

대학가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

박찬운 교수 2017. 7. 17. 14:34

대학가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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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교 주변 식당에 가서 밥을 먹다보면 가끔 제자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때는 혼밥을 하러 간 경우엔, 자연스레 학생들과 합석을 하고, 나올 때 밥값을 내준다.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교수들에겐 이런 게 낯설지 않은 풍경이리라. 학생과 밥을 같이 먹으러 가거나, 잘 아는 학생을 식당에서 우연히 만나는 경우(그게 한 두 사람이라면), 김영란법과 관계없이 교수가 밥을 사는 것은 미풍양속이자 교수의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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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은 그 역현상이 일어났다. 평상시보다 조금 늦게 식당에 도착했는데, 구석에서 아는 대학원생 셋이 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보지 않을 곳에 조용히 앉아 밥을 시키고 막간을 이용 페북 글을 읽었다. 잠시 뒤에 밥을 먹으면서 대학원생들 자리를 보니 벌써 나갔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기 위해 카드를 꺼내니 주인 아저씨가 손사래를 치면서, “교수님, 아까 저기 앉아 있는 분들이 다 내고 갔어요” 하질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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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구실에 들어오자마자 그 대학원생 중 하나인 Y를 호출했다. 영문을 모른 채 달려온 Y가 방에 들어서자, 나는 대뜸, 이렇게 소리를 쳤다. “야 임마, 너희들이 내 밥값을 내고 나가? 그게 말이 되니? 자 이거 받아라.” “아, 선생님, 지난 번 제 여자 친구까지 밥을 사주셨잖습니까, 오늘은 선생님보다 저희들이 식당에서 먼저 나오는데다, 또 혼자 점심을 드시길래, 그만 저희들이 내고 나왔습니다. 죄송합니다.” “내가 너희들 성의는 알겠지만, 그래도 안 돼, 그것은 나와 너희들 관계에선, 있을 수 없어.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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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몇 년 전 나는 스웨덴 룬드라는 곳에서 1년간 연구년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 몇 번 그곳 교수, 학생들과 함께 학교 식당에 간 적이 있다. 그 때 내 관찰대상은 그날 밥값을 누가 어떻게 부담하는가였다. 한국처럼 교수가 부담? 아니면 n분의1? 아니면 교수가 조금 더 내는 차등부담? 그런데 결과는 참으로 싱거운 것이었다. 식당에서 각자 가격이 조금씩 다른 메뉴를 시켜 먹고, 나올 때는 각자 카운터에 가서 자기 먹은 것만 카드계산을 하는 게 아닌가. 그게 북구라파 동네의 문화였다. 교수에겐 학생을 위해 밥값을 대신 내줘야 할 도덕적 의무가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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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이번 여름 방학 한국에 와서 강의를 하는 런던대학의 모 교수(유럽인)를 만나 이런 대화를 하였다. “한국에선 교수들이 학생들과 자주 밥을 같이 먹으러갑니다. 그럴 때마다 밥값은 교수들이 내지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학생들 사이에서 나쁜 교수로 찍힐 겁니다.” “참 대단합니다. 영국에선 그런 일은 도무지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우선 교수들이 학생들 밥 사줄 만큼 돈을 벌지 못해요. 더욱 영국에선 교수들이 공식적인 만남 이외에는 학생들과 밥을 같이 먹지 않습니다. 가끔 공식 파티에서나 만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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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교수, 스웨덴교수, 영국교수의 삶이 이렇게 차이가 난다. 이 차이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하니 가장 큰 원인이 사회보장제도다. 한국의 청년들에겐 사회보장제도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경제적인 것은 모두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어른과 밥을 먹으러 가면 밥값을 낸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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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거긴 복지국가다. 학생들도 자신의 밥값은 자신이 낼 수 있는 구조다.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교수라 할지라도 학생들에게 매일같이 밥값을 내줄 정도로 풍족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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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거긴 요즘 복지에 구멍이 뚫렸다. 교수의 호주머니가 점점 말라가니 마음에 여유가 없다. 더욱 교수와 학생 간엔 간격도 존재한다. 그러니 밥도 같이 먹지 않고 먹어도 밥값을 교수가 낼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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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리 대학생들은 언제 교수와 함께 밥을 먹어도 자기 밥값은 자신이 낼 수 있는 날이 올까? 나는 그날이 하루 빨리 오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