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지혜

이세돌과 알파고, 이것은 문명의 문제다

박찬운 교수 2016. 3. 11. 16:27

이세돌과 알파고, 이것은 문명의 문제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사진 구글)


나는 사실 그 둘이 싸우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다. 누가 이기든 그게 무슨 대수냐.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 언젠가 수퍼 컴퓨터가 한 인간의 지능을 이기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수퍼컴이 인간을 이긴다고 해서 기계가 이겼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그 기계를 인간이 만들었으니. 결국 인간과 인간의 싸움일 뿐이다.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이런 과학기술문명이 가져다주는 미증유의 문명전환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바와 같이 알파고 이후의 세계는 컴퓨터와 로봇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정확하게는 아주 소수의 인간이 절대 다수의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적으론 다중의 의사는 소외되고 소수 엘리트의 시대가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서 민주주의가 종언을 고할 지도 모른다.


좀 더 피부에 와닿는 미래는 노동의 종말이다. 이제 많은 직업이 없어질 전망이다. 저 정도의 지능형 로봇이 일상화된다면 대부분 공장 노동자, 사무 노동자들의 일거리는 하루가 다르게 없어질 것이다. 이제 실업은 일상이 될 것이고 직업 자체가 의미가 없어질 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도 가고, 직업도 없어지고.... 세상은 소수 엘리트들에 의해 지배되고...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죽기 전에 닥칠 미래다.


우리가 이런 미래를 원했던가. 이런 미래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던가.


과학기술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목표없이 뛰어가는 데 인간들은 그것을 구경만 할뿐 잡을 생각도 잡을 능력도 없다.


근대 이후의 과학기술의 본질은 다음 몇 가지였다. 첫째는 빠르기. 모든 게 빨라졌다. 통신 운송기술이 그것을 주도했고 이제 컴퓨터, 인터넷, 로봇이 가세했다.


두번째는 에너지의 과도한 사용. 현대과학기술은 우주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빠른 시간 내에 써 버리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과학기술이 좀 천천히 발전하면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 후대들도 쓸 수 있는 에너지를 남겨둘텐데, 이제 우리는 당대에 모든 것을 써 인류의 종말을 앞당기자는 거대한 물결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셋째, 소수의 즐거움.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것을 인류의 구성원 전원이 즐기지 못한다. 항상 편차가 있고 그 편차를 이용하는 자들이 세상을 지배한다.


알파고는 바로 과학기술이 안고 있는 이런 근원적 문제가 이제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문명사적 사건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할 수만 있다면, 이 과학기술의 무분별한 발전을 좀 막고 싶다. 누구 말대로 과학기술은 적정기술을 지향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을 정도의 과학기술이면 충분하다. 그래야 민주주의도 산다. 이런 적정기술이 세상을 주도하기 위해선 불가피하게 우리의 철학이 바뀌어야 한다.


빠르기의 문명에서 느림의 미학을 배워야 한다. 우리와 후대를 생각하는 거시적 안목의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 세상에 참여하는 우리들의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 그 일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2016. 3.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