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진심으로 사과하기, 그 중요성을 알려준 영화 <Aftermath>

박찬운 교수 2021. 3. 14. 04:31

 

 

 

태평양 전쟁 중 일본군은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조선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젊은 여성을 성노예화 했다. 그런 행위가 국제범죄라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여전히 책임회피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과거 몇 차례 일본 정부의 유감 표명이 있었지만 피해자들이 이를 진지한 사과로 받아들일 순 없다.


더욱 최근의 태도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있어 피해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는 상황이다. 생존해 있는 피해자 할머니의 수가 기십 명에 불과하고 그분들의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이 때, 할머니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 돈 몇 푼일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것은 아니다. 진심의 사과가 필요하다. 할머니들은 눈을 감기 전에 일본정부로부터 그 진심의 사과를 듣기 위해 오늘도 거리에서 일본정부와 싸우는 것이다.


2002년 독일 콘스탄츠 상공에서 두 대의 비행기가 공중충돌을 했다. 한 대는 여객기였고 또 한 대는 화물기였다. 이 사고로 두 대의 비행기에 타고 있던 69명의 승객과 승무원들이 전원 사망했다. 사고의 원인은 여러 가지였지만 주된 원인은 두 비행기가 착륙하려던 공항 관제탑의 관제 실수였다.


이 사고는 이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이후의 또 다른 일(Aftermath)로 세계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사망 피해자들의 유가족 중 한 사람이 사고당시 관제사를 찾아 내 살해했던 것이다. 왜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을까? 왜 그는 피해자로서의 고통을 넘어 또 다른 가해자가 됨으로써 자신을 파멸시켰을까? 그런 살인행위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이야기가 2017년 영국 감독 엘리어트 레스터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이기 때문에 상당부분이 실제와는 다르지만 그래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관중이 느끼는 감정은 리얼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사실 세 남자의 고뇌를 그린 이야기다.


로만(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은 건설 공사장의 평판 좋은 현장감독으로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다. 그는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뉴욕 공항으로 차를 몬다. 그날 저녁 우크라이나에 가 있는 처가 임신한 딸과 함께 오니 마중을 나간 것이다. 그런데 공항에 도착해 전광판을 보니 그 비행기 표시가 이상하다. 불길한 기분에 공항 관계자를 만나 청천벽력의 이야기를 듣는다. 방금 전에 비행기 간의 공중충돌 사고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내와 딸이 타고 있는 그 비행기가 말이다.


제이크(스쿠트 맥네어리)는 뉴욕 공항의 관제사. 그 역시 아내와 어린 아들을 둔 가정의 가장으로 부러울 것이 없는 남편이자 아빠다. 그는 그날 밤 뉴욕 공항 관제탑으로 출근한다. 평상시처럼 일하지만 이상한 일이 하나씩 벌어진다. 동료가 잠시 자리를 비워 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은 혼자 도맡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 시간에 전화선을 고치겠다고 몇 명의 기술자들이 들어오더니 전화가 일시적으로 불통이 된다. 그 때 두 대의 비행기가 마주 보며 근접해 온다. 순간적으로 조치를 취하려 했지만 두 대의 비행기는 레이더에서 사라진다. 공중충돌을 한 것이다.


로만은 아내와 딸을 잃은 충격에 헤어 나오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기도한다. 하지만 생명은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 그의 앞에 공항 관계자와 변호사가 나타나 합의를 종용한다. 합의금으로 16만 불을 제시하나 로만은 그들 앞에 아내와 딸의 사진을 보여주며 단호히 거부한다.


제이크는 어떨까? 그 또한 죄책감과 자책감으로 괴로워한다. 사람들은 그를 살인자라고 부르며 냉대하고 언론사 기자들은 그의 뒤를 쫓는다. 정신적 압박에 가족과는 별거에 들어갔고 자살 충동에 권총을 장만한다. 회사에선 다른 주로 이사를 해 이름을 바꿔 살라고 제안하면서 노골적으로 사표를 낼 것을 종용한다.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그는 회사의 제안대로 이름을 바꾸고 다른 주로 이주해 여행사 직원으로 새로운 삶을 시도한다.


로만은 이 사고를 취재한 테사라는 여성 언론인을 만나 제이크의 소재를 알아낸다. 어느 날 아침 마침내 로만과 제이크는 만난다. 제이크의 집엔 전날 처 크리스티나와 아들 샤무엘이 와서 자고 있었다. 로만은 제이크와 조우하자마자 가족사진을 내밀며 사과를 요구한다. 이제껏 어느 누구도 이 사고에 대해 사과한 바가 없다면서... 그런데 제이크가 이 돌발적인 상황에서 사과는커녕 경찰을 부르겠다고 소리를 지른다. 순간, 로만은 격분한다. 그는 준비해간 칼로 제이크의 목을 찌른다. 제이크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데 그것을 크리스티나와 샤무엘이 목격한다.


로만은 살인행위로 감옥에 가고 10년을 복역한 다음 가석방으로 석방된다. 그는 아내와 딸이 묻혀 있는 묘지에 가 망인들을 추모한다. 이 때 한 청년이 나타난다. 누구일까? 청년이 된 제이크의 아들 샤무엘. 그는 로만에게 총을 겨눈다.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을 찾아 복수에 나선 것이다. 로만은 체념을하고 이렇게 한 마디 한다. 미안하다. 너의 아빠를 죽인 것은 잘못이었다.” 그 말에 샤뮤엘은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로만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제이크의 회사는 피해자 유가족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돈 때문이었다. 제이크는 번민과 방황의 생활을 하였지만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용기는 내지 못했다. 아마 회사입장을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고가 난 날 제이크의 잘못을 꼭 집어 낼 수도 없다. 그로서는 재수가 없어 그리 된 것일 뿐 누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상황을 바꾸진 못했을지도 모른다.


공항회사와 제이크는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했어야 했다. 사과 없음이 로만을 살인자로 만들었고 또 샤무엘을 제2의 살인자로 만들 뻔 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은 것은 로만의 진심어린 사과였다. 그도 피해자로 인생 전체를 잃었지만 그 자신의 행위에 대해 진지한 사과를 함으로써 이 비극적 사고를 마무리했다. 사과의 힘은 이처럼 세다. 돈보다 훨씬 강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