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Essays 68

죽는 복, 복 중의 복

죽는 복, 복 중의 복 이제 올 한 해가 저물었습니다. 며칠 지나면 나이 한 살을 또 먹습니다. 제겐 나이 먹는 게 즐거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20대에 법률가가 된 저로선 나이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한참 젊은 때에 나이 든 의뢰인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매일 같이 만나는 동료 변호사들 대부분이 적게는 10년, 많게는 30년 이상 연상이었으니, 처신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새해 나이를 먹을 때마다 연륜이 쌓이는 것 같아 흐뭇했습니다. . 이젠 나이 먹는 게 즐겁지 않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제일 큰 어려움은 주변의 죽음을 너무 자주 본다는 것입니다. 요즘 제일 많이 찾아다니는 곳이 장례식장입니다. 올해도 다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20회 이상 장례식장을 다녀왔습니다. 죽음..

우리는 먼저 인간이고, 그 다음이 국민이다 ㅡ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부쳐ㅡ

우리는 먼저 인간이고, 그 다음이 국민이다 ㅡ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부쳐ㅡ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1948) 오늘이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이다. 1948년 12월 10일 신생 국제연합은 창립 3주년을 맞이해 역사상 가장 의미있는 선언을 한다. 모든 인류는 존엄한 존재이며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정식명칭은 인권에 관한 보편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곧 인권은 세계 어디에서도 보편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선언이다. . 오늘 그 의미를 되새기며 한마디한다. 인권사회를 위한 전제로서 우리가 정립해야 할 '나와 국가와의 관계'에 관해서다. . 송년회 철이 되었다. 요즘 저녁이 되면 송년회에 다녀오는 일이 ..

법률가 앞에 놓인 두 가지, 욕망과 정의

법률가 앞에 놓인 두 가지, 욕망과 정의 우리는 욕망과 정의 어느 지점에서 살고 있다. 욕망을 배제하며 정의만을 추구할 수도 없고, 정의를 배제한 채 욕망만을 추구할 수도 없다. 두 가치 사이의 적절한 위치를 찾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 매일 매일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우리들의 실존이다. 법률가들은? 그들도 똑 같을까? . 김두식 교수가 쓴 이란 책에 이법회(以法會) 이야기가 나온다. 1945년 8월 15일 조선변호사시험을 보기 위해 200여 명의 청년들이 시험장에 모였다. 그런데... 그날 시험장엔 시험 감독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고 조선이 해방이 되는 날인데 어떤 관헌들이 일을 할 수 있겠는가. . 이 상황에서 절반이 넘는 수험생들(이 사람들이 이법회 회원들임)이 대표를 뽑아 시험..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쾌락주의자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쾌락주의자 요즘 방송국 섭외가 심심치 않게 들어온다. 여러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니 그 관련 방송토론에 나를 초대하고 싶단다. 지금도 모 방송국 작가가 문자를 보내 왔는데 아무래도 그런 요청일 것 같다. 나는 이런 요청이 올 때마다 대부분 거절한다. 얼굴 팔고 다닐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얼굴 내밀지 않아도 언론엔 이미 내 이름이 꽤 많이 나갔다. 페북 영향력이 대단해 이곳에 글 쓰는 것만으로도 내 입장은 충분히 언론에 전달된다. 포탈에 내 이름을 쳐보시라, 내 이름 들어간 기사가 셀 수 없이 많다. 사실 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지금쯤 대중적으로 상당히 유명한 사람이 되었을지 모른다. 이십 수 년 전 모 방송국에서 토론 프로를 만들면서 사회자로 나를 섭외했다. 그 요청을 받고 며칠..

행복에 대한 단상

빈센트 반 고흐, 첫 발을 뜨는 아기, 1890. 여기의 세 사람은 어느 누구도 나만의 행복은 없다. 모두가 행복해야 행복이다. 남자는 섹스를 할 때, 상대가 극적 쾌감을 느끼는데서, 절대적 만족을 느낀다. (아마 이것은 여자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한다.) 남자의 오르가즘은 생식기의 마찰에서 오는 물리적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가 나 없이는 죽을 것 같은 극한의 갈망을 표현할 때 대뇌를 통해 느끼는 지극한 충족감이다. 따라서 나의 행위를 통해 상대를 즐겁게 해 주지 못한다면, 그것을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쾌감은 사실상 없다. 만일 그것을 통해서도 무언가 쾌감을 얻는다면 그것은 동물적 배설이 가져오는 신체적 변화에 불과하다. 나는 그런 섹스를 배격한다. 인간의 행복도 따지고 보면 섹스와 마찬가지다. ..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 아래 본문은 3년 전 이곳에 올린 글이다. 오늘 아침 어느 페친이 이 글을 읽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보게 되었다. 이 글을 쓰고 어느새 3년이 지났는데... 나는 그동안 어떻게 살아 왔는가. 잠시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 ------ . 조용한 일요일 아침이다. 이 적막한 시간과 공간에 감사하자. . 어젠 길게 산책했다. 평소 만보 걷기가 일상이지만 그 두 배를 훨씬 넘겼다.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가끔은 벤치에 앉아 메모도 했다. 그 메모했던 것을 여기에 옮긴다. . 내가 대학으로 직장을 옮긴 지 어느 새 9년. 나름대로의 꿈이 있었다. 진리를 추구한다는 꿈 말이다. 내가 생각했던 대학에서의 꿈은 이런 것이었다. . 1. 대학은 단순한 기능을 연마하는 곳이 아니라..

내가 세상에 말하고 써야 하는 이유

내가 세상에 말하고 써야 하는 이유 2018년 6월 사법농단 규탄대회를 변호사회관 앞에서 했다. 그 때 나는 마이크를 잡고 사법농단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요구했다. 저는 이 공간에서 지난 몇 년 간 셀 수 없는 글을 써왔습니다. 무슨 생각으로 저는 그렇게 썼을까요.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습니까. 제 글을 가끔 보시는 분들은 저를 매우 고상한 세계에서 사는 인물쯤으로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게 바로 제가 항상 두려워하는 인물평입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것을 부인했지만 오늘 다시 그 말부터 해야겠습니다. 저는 그리 고상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저 역시 흠이 많습니다. 정의감도 용기도 어디 내세울 정도가 아닙니다. 도덕적으로만 사는 사람도 아닙니다. 항상 일탈을 꿈꾸며 그것을 즐겨보려고..

같은 샘에서 나온 물도 전혀 다른 목적지로 흐른다

같은 샘에서 나온 물도 전혀 다른 목적지로 흐른다 1986년 겨울 사법연수원 수료를 앞두고 설악산 여행을 갔을 때 동기생들과 함께 어제 오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아는 기자가 영장발부 가능성을 물어 왔다. 나는 말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내가 언론에 대고 그의 구속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쩐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임종헌, 그는 나의 사법연수원 동기다. . 머릿속에서 글 하나가 생각 나 찾아보았다. 작년 3월 이정미 헌법재판관이 정년퇴임을 하는 날, 나는 이곳에 이런 글을 썼다. ...... 오늘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했다.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임기 마지막에 대한민국 역사 한 페이지를 장식할 사건의 재판장이 되어 혼신의 ..

Best Essays 2018.10.26

한글날에 생각하는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한글날에 생각하는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 오늘은 한글날이다. 솔직하게 말해, 나는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산 적이 별로 없다. 해외에 나가 공부를 하거나 여행을 할 때, 한국역사와 문화를 자주 생각해 보았지만, 외국인들에게 딱히 자랑할 만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한 가지, 나로 하여금 한국인, 한국문화에 대해 무한 긍지를 가져다주는 게 있다. 바로 한글이다. 인류역사상, 모든 사람들이 알기 쉽게 자신의 언어를 표기할 수 있는 문자를, 인위적으로 만든 예가 한글 외에 또 어디에 있을까. 그 목적성과 그 과학적 수준을 어느 문자 체계가 따라올 수 있을까. 우리가 한글날을 자랑스러운 날로 대대손손 경축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한글날, 이 특별한 날을 맞이해, 글쓰기에 대해..

평등적 자유, 자유주의적 평등 -내가 지향하는 것-

평등적 자유, 자유주의적 평등 -내가 지향하는 것- 나는 지난 5년 간 이곳에 많은 글을 써왔다. 그중엔 내가 지향하는 가치나 철학이 무엇인지 잘 드러나지 않는 글도 있지만 대부분 글에서 그것들을 분명히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내가 이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이루어 보고자 하는 가치나 철학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표현하면 ‘평등적 자유’다. . ‘평등적 자유’는 자유를 지향하되 공동체적 가치 속에서(한계에서) 추구한다는 것이다. 평등은 자유를 누리게 하는 환경이자 능력이다. 이것은 사회적 연대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사회적 연대가 없는 자유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것 없는 자유는 결국 한 사람 혹은 소수만의 세계를 의미한다. . 내가 지향하는 평등은 선험적 평등이 아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