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 163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을 찾아 -한 가문에 빚진 마음을 갖다-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을 찾아 -한 가문에 빚진 마음을 갖다- 금요일 오후 연구실을 나섰습니다. 마음이 조금씩 흥분되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가보았어야 할 곳이기에 때 늦은 방문이지만 좋은 기회가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광화문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세 정거장을 가니 효자동. 박근혜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시민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곳입니다. 정거장에서 도보로 3백 여 미터를 걸어가니 목적지에 닿았습니다. 어딜까요?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 .기념관을 들어가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철우 교수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지인이지만 이곳에서 만나니 기분이 특별합니다. 이 교수는 우당 선생의 증손자입니다. 이번 방문은 지난 번 제가 이곳에 포스팅한 ‘한 가문을 넘어 모든 이의 역사가 된 가문 이야기..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방문하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방문하다 울산을 방문하는 기회가 있으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반구대 암각화. 국보 285호. 선사시대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강변 암석에 고래와 호랑이 등을 그렸다는 그 신기한 유적 말이다. . 지난 주말 울산지방경찰청에서 강연을 마치고 울산에 사는 지인의 안내를 받아 그곳을 찾았다. . 1971년 동국대 문명대 교수팀에 의해 발견되고 1995년 국보로 지정되었으니, 문화재에 관심 있는 사람으로선, 너무 늦은 답사다. . 이곳은 울산광역시 언양군 대곡리 대곡천 상류. 고래가 그려져 있으니 바다 가까운 계곡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는 바다에서 상당히 떨어진 산 속 계곡이다. 1만여 년 전엔 이곳이 지금과는 사뭇 다른 환경이었을 지 모른다. 바닷물이 현재의 계곡 근방까지 오지 않았을..

2018 남부 독일을 기록하다(최종회) 사진으로 보는 바이에른의 이모저모

2018 남부 독일을 기록하다(최종회) 사진으로 보는 바이에른의 이모저모 이번 여행에선 뜻밖에도 동료교수와 함께 바이에른의 이곳저곳을 차로 둘러보기도 했다. 함께 학술대회에 참가한 송호영 교수(민법)가 함부르크에서 차를 빌려 500킬로미터 이상을 달려 내가 있는 레겐스부르크까지 온 것이다. 송교수는 오래 동안 독일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독일어에 능통하고 지리에 밝아 바이에른의 이곳저곳으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그 덕에 나 혼자라면 도저히 가볼 수 없는 곳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오늘 나는 송교수의 안내로 돌아본 바이에른의 몇 도시를 사진을 중심으로 소개해 볼까 한다. 무언가 자세히 쓰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돌아본 도시에 대한 예비지식이 부족해 사실 많이 보질 못했다. 자고로 여행이란 아는만큼 보..

2018 남부 독일을 기록하다(7) 두 사람과의 만남 -노이에 피나코테크-

2018 남부 독일을 기록하다(7) 두 사람과의 만남-노이에 피나코테크- 노이에 피나코테크에 있는 반 고흐의 해바라기(1888) 내가 뮌헨에 간 목적은 알테를 보았으니 이제 노이에를 볼 차례. 노이에 역시 알테와 함께 뮌헨의 미술관 지역 쿤스트아레알(Kunstareal)에 있다. 노이에(new)라고 해서 새 미술관이 아니다. 이 미술관의 건립은 사실 알테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모두 19세기 바이에른의 왕 루드비히 1세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다. 루드비히는 하나의 미술관에 모든 시기 작품을 거는 것을 거부했다. 그에겐 당대에 만들어진 명화를 걸어둘 새로운 미술관을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이 New Museum 곧 노이에 피나코테크이다. 노이에 피나코테크 앞에서 사실 내가 뮌헨에 간 목적..

2018 남부 독일을 기록하다(6) 진품명품을 찾아 뮌헨으로(1) -알테 피나코테크-

2018 남부 독일을 기록하다(6) 진품명품을 찾아 뮌헨으로(1)-알테 피나코테크에서 뒤러의 자화상을 만나다- 뒤러의 자화상(알테 피나코테크) 뮌헨이 작은 아테네가 된 이유 바이에른의 수도 뮌헨엔 볼 게 많다. 주마간산 격으로 본다고 해도 하루 이틀로 가능한 게 아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내가 뮌헨에 온전히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은 오로지 하루. 이 짧은 시간 내에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서울을 떠나기 전부터 결정한 것은 보고 싶은 미술작품 몇 점을 보는 것이었다. 옛날부터 뮌헨에 가면 꼭 보고 싶은 진품명품이 몇 개가 있었다. 그것을 보러 가자! 뮌헨을 대표하는 미술관은 역시 피나코테크다. 이것은 그리스어로 미술관이란 뜻. 피나코네크를 처음 만든 이도 그 유명한 바이에른의 왕 루드비히 1세다. 그..

2018 남부 독일을 기록하다(5) 기억의 도시 뉘른베르크를 찾아

2018 남부 독일을 기록하다(5) 기억의 도시 뉘른베르크를 찾아 히틀러가 의사당으로 건축하다가 미완으로 그친 건물, 지금 이 건물은 나치 역사자료관으로 사용되고 있다.(사진 위키피디아) 내가 뉘른베르크를 간 이유 독일 남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바이에른은 과거 독일 제후국 중 가장 강력한 국가 중 하나였다. 1871년 통독은 프로이센이 했지만 바이에른의 영화가 끝난 것은 아니다. 바이에른은 그 뒤에도 여전히 강했고 독일의 운명을 결정 짓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거기엔 자원과 돈 그리고 인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바이에른의 장구한 역사와 전통이다. 바이에른은 독일 중의 독일이다. 바이에른의 여러 도시 중 뉘른베르크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독일의 정 중앙에 위치해 자연스럽게 전 독일의 지정학적..

2018년 남부 독일을 기록하다(4) 영웅의 전당, 발할라

2018년 남부 독일을 기록하다(4) 영웅의 전당, 발할라 -독일 민족주의의 현장을 가다- 독일 민족 명예의 전당, 발할라 어렵게 찾아간 발할라 버스를 내려 혹시나 방향이 맞는 지 동네 아저씨에게 손짓발짓으로 물어보았다. 방향은 맞단다. 동네를 지나 야산으로 오르는 길로 접어들었을 때 잘못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이토록 사람이 없을 리가 없지 않은가. 적어도 그곳을 찾는 이들이 버스를 채웠을 터인데... 그들 뒤만 따라가면 목적지가 나올 줄 알았는데... 단 한명도 그곳으로 가는 이가 없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는가. 나는 산으로 올라가는 작은 길로 들어서며 뭔가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이게 그 명소에 오르는 길이라고 생각하니 한심스러웠다. 돌아가야 하는가? 그렇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발길을 돌..

2018년 남부 독일을 기록하다(3) 만일 독일에서 한 곳만 간다면

2018년 남부 독일을 기록하다(3) 만일 독일에서 한 곳만 간다면-황태자의 첫 사랑 하이델베르크를 찾아- 철학자의 길에서 바라 본 하이델베르크 전경 만일 독일에서 한 곳만 간다면 독일을 처음 온 게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적어도 5번 이상 독일을 왔다. 그렇지만 그 독일 방문은 대개 공무로 왔기 때문에 베를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몇 년 전 스웨덴 룬드에 있을 때도 독일을 두 번이나 왔지만 그 때도 베를린과 함부르크였다. 남부는 4년 전 바덴바덴, 2년 전 튀빙엔 대학을 왔을 때가 전부다. 그러니 이번 기회가 남부 독일을 제대로 돌아 볼 수 있는 기회다. 오기 전 독일을 잘 아는 지인들에게 물었다. "독일에 가서 딱 한 군데를 간다면 어디를 가는게 좋겠소?" 답은 그곳이었다. 이번 학술대회에 함께..

2018년 남부 독일을 기록하다(2) 독일 남부의 보석, 콘스탄츠

2018년 남부 독일을 기록하다(2) 독일 남부의 보석, 콘스탄츠 콘스탄츠 대성당 첨탑에서 본 콘스탄츠 전경 학술대회가 끝났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콘스탄츠 구 도시(old city)를 볼 차례다. 크지 않은 구 도시를 걸으면서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생각을 했다. 잠시 그것을 스케치해보자. 콘스탄츠는 독일의 바덴 뷔르템부르크 주(주도 프라이부르크)의 한 도시다. 콘스탄츠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곳에 와서 며칠 지내다 보면 이곳이 오랜 세월 영광의 도시였음을 곧 알 수 있다. 알프스에서 내려오는 물이 모여 만든 보덴제(Bodensee)는 독일 내에서 가장 큰 호수다. 면적 536 평방킬로미터. 서울 전체 면적에 육박한다. 이 보덴제에서 라인강이 시작하고, 그것을 사이로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가 국경을 맞대..

2018년 남부 독일을 기록하다(1) -콘스탄츠 3국 학술대회

2018년 남부 독일을 기록하다(1) 성실한 법학자들의 모임, 콘스탄츠 3국 학술대회 콘스탄츠 대성당에서 본 구도시와 보덴제 콘스탄츠로 가는 길 서울을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절반은 성공했다고 본다. 그러나 훌훌 떨쳐버리고 떠난다는 게 쉽지 않았다. 서울을 떠나기 전날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상황이 조금만 악화되면 언제든지 독일 콘스탄츠로 가는 여정은 취소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제일 큰 문제는 아버지의 건강이었다. 지난 달 초부터 심상치 않은 일들이 아버지 몸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달여에 걸쳐 검사를 해보니 몸의 몇 부분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모양이다. 90을 바라보시지만 그 연배의 다른 노인 분들과는 비할 수 없는 건강과 지력을 가지고 계신데... 이젠 아버지도 별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