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지혜 26

교수가 무시할 수 없는 학생

교수가 무시할 수 없는 학생 .학교에 있으면서 많은 학생을 봅니다. 학기가 끝나면 학생들 중 상당수는 자연스레 잊혀집니다. 그러나 제 머리에 오래동안 남는 친구들도 꽤 있습니다. 그런 친구들이 어떤 학생들인지 리스트를 작성해 보았습니다. ( )는 간단한 이유입니다. .1. 항상 앞 자리에 앉아 교수의 강의를 경청하는 학생(적극적이고 집중력이 강함) .2. 수업 중에 질문을 자주하되, 내용상 준비된 질문을 하는 학생(치밀하고 준비성이 좋음) .3. 질문을 하거나 답변을 할 때 교수의 눈을 마주볼 수 있는 학생(용기있고 자아가 강함) .4. 과제 리포트에 정성이 들어가 있고 각주나 참고문헌 정리를 잘 한 학생(정직하고 똑똑함) .5. 이성친구(캠퍼스 커플)와 함께 수강해도 떨어져 앉아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

예의 없는 사람은 멍청이다

예의 없는 사람은 멍청이다 어디서인가 ‘예의 없는 사람은 멍청이’라는 짧은 글을 본 적이 있다. 백 퍼센트 동의한다. 그런 생각을 평소에 나도 해왔기에 여기서 한 번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예의 있게 행동하면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것은 동서고금 인간관계의 철칙이다. 그럼에도 이것을 모르면서, 아니 이것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오랜 세월 그것을 배워 왔음에도 그들에겐 이 ‘예’란 게 도무지 몸에 배지 않는다. 그들은 말만 하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모든 게 자기중심적이라, 얼굴에 철판을 깔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을 365일 해대며 산다. 이런 무례한 사람들이야말로 천하의 멍청이들이다. 자기 딴엔 머리도 좋고 세상 이치를 다 안다고 생각해 뱉..

올림픽과 인생

올림픽과 인생 . 설 연휴 몸도 마음도 아파 꼼짝 없이 집구석에서 방콕하고 있습니다. 그 덕에 올림픽 경기를 원 없이 봅니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그 다음엔 재미로, 지금은 감동으로 봅니다. 특히 선수들의 환호와 비애를 목격할 때는 마음이 찡합니다. 그럴 땐 이 올림픽의 무대가 어쩜 우리 인생의 축소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선수는 올림픽 전부터 부동의 세계 1인자란 소리를 듣다가 결국 평창에서 예상대로 금메달을 목에 겁니다. 그러나 이런 선수는 많지 않습니다. 분명 있기는 하지만 예외적 존재입니다. .많은 선수들이 우승의 문턱에서 어이없게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부딪히는 바람에 순위에 오르지 못합니다. 지난 4년간의 피땀 흘린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 그들은 빙판 위에서 눈물을 뿌립..

페북 신(新) 십계명

페북 신(新) 십계명. 올해도 이 공간에서 잘 놀았습니다. 별로 후회는 없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페북을 많이 하다 보니 고민도 커져 갑니다. 이 공간과 나와의 관계를 잘 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곧 잘 합니다. . 5천 명 가까운 친구가 있다 보니 온갖 글들이 다 올라옵니다. 페친의 글에서 많이 배웁니다만 때때로 이 공간이 시끄럽고 혼탁하기까지 합니다. 욕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큰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 몇 년 전 페북 초기 시절 제 나름의 원칙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페북 십계명’을 만들어 실천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십계명에 많은 페친들이 공감을 표시했습니다. 그 뒤 몇 년이 지난 지금, 저의 환경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페친 수, 포스팅의 수, 페친들의 반응 등등 많은 변화가 ..

사진으로 읽는 인문정신

사진으로 읽는 인문정신 법학은 학문인가, 기술인가.인문학이 유행한다. 서점에 가보라. 하루에도 수 십 종의 문·사·철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책들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인간과 자연은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 질문들이다. 우리는 어떤 시대에도, 어떤 상황에도 이런 질문에 답하지 않고 살 수 없다. 이 같은 질문에 답하지 않고서 우리가 하는 일에 완전성을 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30년 이상 법학을 공부하면서 항시 무엇인가 공허함을 느껴 왔다. 원인을 생각한 즉, 우리가 배운 법학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 한계 때문이었다. 우리의 법학교육에는 인간이란 주제가 없다. 법학..

러셀 어록 -자비와 관용-

러셀 어록 -자비와 관용- .한반도 정세가 심각해지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평화보다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존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이리저리 책장을 넘기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평소 좋아하는 버트런드 러셀의 말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전반적 문제는, 어리석고 광기어린 자는 항상 확신에 차 있는데, 그보다 현명한 자들은 의심에 차 있다는 것이다.”The whole problem with the world is that fools and fanatics are always so certain of themselves, and wiser people so full of doubts. 이것이 세상 이치일지 모릅니다. 세상을 망치는 이들은 어..

대학가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

대학가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 .1. 학교 주변 식당에 가서 밥을 먹다보면 가끔 제자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때는 혼밥을 하러 간 경우엔, 자연스레 학생들과 합석을 하고, 나올 때 밥값을 내준다.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교수들에겐 이런 게 낯설지 않은 풍경이리라. 학생과 밥을 같이 먹으러 가거나, 잘 아는 학생을 식당에서 우연히 만나는 경우(그게 한 두 사람이라면), 김영란법과 관계없이 교수가 밥을 사는 것은 미풍양속이자 교수의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은 그 역현상이 일어났다. 평상시보다 조금 늦게 식당에 도착했는데, 구석에서 아는 대학원생 셋이 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보지 않을 곳에 조용히 앉아 밥을 시키고 막간을 이용 페북 글을 읽었다. 잠시 뒤에 밥을 먹으..

지식인의 글쓰기-독자 중심의 명료한 글을 쓰자-

지식인의 글쓰기-독자 중심의 명료한 글을 쓰자- 평소 독서를 좋아하는 지인이 내게 한마디 한다.“교수님, 저는 인문학 책 읽기를 좋아해요. 요즘 현대 철학 책을 읽는데, 너무 어려워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왜 글이 그렇게 꼬였는지 풀을 수가 없어요.”이 말을 듣고 한참 생각했다. 왜 글이 어려울까? 페북 공간을 하루에도 셀 수없이 들어오면서 남의 글을 본다. 어떤 글은 알기 쉽지만, 또 어떤 글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어디서 그런 차이가 오는 것일까?요즘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의 위기를 말한다. 나는 이 위기의 근본적 원인 중 하나를 글쓰기에서 찾는다. 지식인, 그중에서도 인문학자나 인문서 번역가들은 알기 쉬운 글을 쓰고, 알기 쉽게 번역해야 한다. 그래야만 글을 읽는 저변이 ..

기! 끼! 깡!

기! 끼! 깡! 어제 종강을 했습니다. 처음 설강한 교양과목이었기에, 나름,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했습니다.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큽니다. 좀 더 좋은 강의를 했을 걸, 좀 더 사랑해 줄 걸, 좀 더 많은 것을 줄 걸.... 아쉬운 마음에 이런 이야기로 강의를 맺었습니다.----------친구들아, 자유롭게 살자. 친구들아, 세상에 나가 거침없이 살자.그리 살기 위해선, 우리 몸과 마음을 기운차게 만들자. 기! 그리 살기 위해선, 우리 자신을 좀 다르게 바라보자.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이 살 필요가 없다. 나만의 길을 가자. 끼! 그리 살기 위해선, 때때로 인생에 승부를 걸면서 살자. 위험한 것 같아도 마음속에서 무언가 강한 울림이 있을 때 그것에 응답하자. 깡! 우리 외치자...

이세돌과 알파고, 이것은 문명의 문제다

이세돌과 알파고, 이것은 문명의 문제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사진 구글) 나는 사실 그 둘이 싸우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다. 누가 이기든 그게 무슨 대수냐.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 언젠가 수퍼 컴퓨터가 한 인간의 지능을 이기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수퍼컴이 인간을 이긴다고 해서 기계가 이겼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그 기계를 인간이 만들었으니. 결국 인간과 인간의 싸움일 뿐이다.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이런 과학기술문명이 가져다주는 미증유의 문명전환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바와 같이 알파고 이후의 세계는 컴퓨터와 로봇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정확하게는 아주 소수의 인간이 절대 다수의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적으론 다중의 의사는 소외되고 소수 엘리트의 시대가 온다는..